앵글로 색슨 우월주의에 빠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중국·필리핀을 미개국가로 본 반면, 일본은 러시아 남하를 저지할 우등생으로 여기며 일본이 한국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재임시인 1905년에 필리핀은 미국이 한국은 일본이 지배하기로 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은 그 해 11월에 강제적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접수하고 일본 통감이 한국에 주재하는 조약을 체결했으며 5년 후에는 한반도를 완전히 일본 영토로 만들어 36년 동안 잔혹한 식민지배를 했습니다. 1951년 9월 8일 2차대전을 종결짓는 일본과 연합국 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일본에 전쟁책임을 묻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국제법적으로 강제한 조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강제점령한 영토 반환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고, 식민지 범죄행위에 대한 배상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일 간의 최대 현안인 독도도 5차 수정안까지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지역으로 명시했다가 일본의 로비와 미국의 불분명한 태도로 인해 6차 수정안에서 아무 설명 없이 빠졌습니다. 만약 당시 일본 군국주의 침략에 대한 완전한 청산이 이뤄졌다면 독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고, 군위안부 강제동원도 뻔뻔스럽게 부인하고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미국이 일본에 주목한 것은 2차대전 청산이라는 역사적 책무가 아니라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른 일본의 지정학적 가치였습니다. 공산주의 확신을 막기 위해 일본을 `패전국`이 아닌 `우방국`으로 만드는 데 미국의 목적이 있었던 셈입니다. 강화조약이 체결된 당일 미국과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일본은 `전범국`으로서의 심판을 받을 틈도 없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지난 연말 아베가 전격적으로 A급 전범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미국은 백악관의 성명을 통해 "일본에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 현정권 1기 때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커트 캠벨 동아태차관보가 `위안부(comfort woman)`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즉시 `성노예(sex slave)`라고 정정하는 등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2기에 들어서면서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영토 문제에 대한 아베정권의 과거 잘못을 부정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주변국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지역 내 모든 당사자에 도움이 된다"는 원론적인 언급만 되풀이하며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심지어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나치식 개헌을 얘기해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식 지지하면서 아베의 등을 밀어 주었습니다. 그 힘에 탄력을 받아 야스쿠니 신사까지 줄달음친 것입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팽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일본 우익의 대외전략이 고맙기도 하겠지만 동북아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 우익의 접근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미국은 직시해야 합니다. 동북아의 안전과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일본 우익의 역사 인식을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은 이제라도 그들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케리 국무장관이 일본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에 왔을 때 우리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과거사는 뒤로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는 쓴소리와 "오바마 대통령 방한까지 한·일 갈등이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는 통첩성 경고까지 날리고는 "한국 떡볶이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좋다가 말았습니다. 일제 강점시 미국 선교사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일제의 한반도 지배에 대해 침묵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정부가 한·일의 갈등을 놓고 역사와 정치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브리핑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동북아를 향한 군사적 역할의 확대를 원하는 것에서 착잡한 과거가 연상됩니다.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해야 우방인 일본과의 갈등을 중재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과거사 문제는 결코 과거 일이 아니라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므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한·일 관계의 비극을 잉태한 원인이 된데 대해 미국이 책임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재확인하고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아 주기 바랍니다. 아베 정권은 망언을 늘어놓으면서도 미국의 눈치를 심하게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실망했다"고 하자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우르르 미국으로 몰려가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일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한·일 관계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2014. 3. 7)
최종편집:2025-07-11 오후 04: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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