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여름에 배추 씨를 포트에 심어서 배추 모종을 준비하였다. 가을 초입에 밭에 옮겨 물을 주고, 정성들여 가꾸어서 11월 말쯤에 배추 50포기 정도를 수확하여 김장을 하였다.
내가 기른 배추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고,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상품 가치가 있는 고급 배추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농약 배추로 김장을 담그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수확량이나 상품 가치는 나에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아주 포기가 작고 김장용으로 쓸 수 없는 나약한 10포기 정도는 밭에 그대로 두었는데, 겨우내 얼어 죽은 줄 알았던 배추가 새봄이 다가오자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정말 식물의 생명력은 경이로운 것 같다. 3월 말이 가까워오자 제법 잎이 넓은 배추의 모양새를 갖추었는데, 그 잎을 따서 삼겹살을 구워 배추잎에 싸 먹으니, 배추와 삼겹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았다.
지난 가을에는 쓸모없고, 볼품없었던 배추가, 그것도 김장용으로 쓰이지도 못했던 배추가, 겨울에 얼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배추가 봄이 되어 다시 새싹을 움틔우고 기어코 나에게 맛있는 훌륭한 음식이 되어서 큰 기쁨을 주다니!
아내도 정말 맛있는 배추라면서 다음 주 일요일에 밭에 가면 배추 잎을 더 따오라고 부탁을 하였다. 사람들은 보기에 싱싱하고 상품가치가 있는 물건을 찾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농약과 비료의 인공적인 힘을 빌려 자란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가을에는 아무 쓸모없는 배추였지만,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봄에 나에게 싱싱한 배추잎으로 입맛을 돋우어 주고, 지금은 튼실한 배추 씨앗을 잉태하여 유종의 미를 거둔 이 배추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겨울을 이겨 낸 배추야,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