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서 꼭 한 마디 할 것이 있다. 바로 정치냉소주의이다.
새정치 하겠다고 혜성같이 나타나 한 차례 대통령 예비후보도 하고 기성정치권과는 다르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기존 민주당과 합당을 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더구나 어제같이 민주당을 구정치의 한 축이라고 비하하고 야권통합은 커녕 연대도 없다고 했으니 평소 지지했거나 반대에 섰던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삼고초려를 넘어 십고초려를 해 동참했던 유력인사도, 멘토로 자처했던 인사도, 새정치에 걸맞은 새 인물도 중도결별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래 놓곤 정작 본인은, 여당이 기초선거에서 무공천하기로 한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한다고 힐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던 `새정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으로 빗대기도 낯 뜨거울 지경이다.
정치는 현실이라고 했다. 교과서처럼 되지 않는 것이 정치이다. 발상이 너무 순진하다. 세파에 닦이고 낙선도 해보고 정치판에서 휘둘려 봐야 과연 `정치`가 뭣인지 알게 되는 것이 정치의 본형이다. 이상향이 상상의 세계이듯 정치도 이상정치는 없다. 이론으로는 있어도 실재(實在)는 없다. 대안의 신기루이다.
새정치 하겠다고 나선지 3년여 사이 일관된 주장은 없고 정책 방향은 조삼모사를 면치 못했다. 이름에 맞춰 `철수 3번`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아직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호사가들의 희롱 섞인 말이 예사로 나왔다.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별로 믿는 사람이 없었다.
합당 정강정책에 6·15선언과 10·4선언을 빼자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더니 7·4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모두 넣으니 가까스로 봉합이 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7·4와 `기본합의서`를 넣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알게 하고도 남는다. 전임 대통령 묘소 참배가 무슨 `꽃놀이패`인가.
두 정파가 합쳤으니 대표가 공동대표이다. 좋게 보면 쌍두마차인데 또 다르게 보면 2인3각의 불편한 동거이다. 공동이라는 이름에 충실하려 공식 비공식 회의 때마다 두 대표가 나란히 동시에 입장과 퇴장을 한다. 보조가 흐트러져 언밸런스가 되면 어찌 그렇게 어색하든지 어떨 땐 보는 이로 하여금 민망하게도 한다. 2인3각 경기처럼 밸런스를 요하는 경기도 없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학부모들의 그 비틀거리며 보조를 맞추려 애쓰던 안쓰러운 형국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다 한쪽이 넘어지면 폭소가 터졌다. 기자회견도 인터뷰는 예외는 아니었다. 어찌 그렇게 부자연스러운지, 앞길이 순탄치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면 너무 나간것일까?
문제는 또 있다. 폭침인지 좌초인지 명쾌하게, 통일된 입장도 내놓지 않다가 창당대회 하는 날 대표 옆자리 하나를 비워 두고 꽃다발만 놓았다. 천안함 46용사의 자리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 당 소속 한 광역단체장은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냉소주의는 여당도 다를 것이 없다. 좀 거대 여당답게, 국정의 한 측이라는 사명감으로 통 큰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이미지 정치를 한다며 이벤트 행사장에서 펼치는 어설픈 세리머니에 어쩐지 연민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표 앞에서는 그렇게 작아지는가. 별명을 쓰고, 이름자를 딴 3행시를 짓고···. 공당의 승리보다 계파의 승리에 몰두하는 행태, 사안 따라 유·불리 따라 룰이 오락가락 한다. 그야말로 고무줄 잣대이다.
서울시장! 대단히 중요한 자리이다. 흥행몰이 한다며 분위기를 띄우더니 자중지란인가, 이전투구인가? 대전(?)을 앞두고 일사불란 총력을 기울여도 시원찮을 판인데 말이다. 정말 실망스럽다. 2년여 전에 발의했다는 `원자력 방호법`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는 정부와 여당, 참 한심하다. 국익 우선보다는 당리당략을 우선하고 국정 발목만 잡는다고 야당을 질책만 할 것이 아니라 솔직히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시인하고, 국제회의 의장국이고 국격에 관한 일이니 읍소를 하더라도 통과시켜 주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정치력이 아닌가. 좀 심하게 말해 야당의 트집 수준의 발목잡기도 있을 것이다. 더 바로 말하면 그게 바로 야당의 숙명 같은 게 아니겠는가?
여당에게 묻는다. 선거는 민심이다. 선거운동도 필요하다. 선거를 왜 작위적 구도로 몰고 가려 하는가. 최후 선택은 유권자 손에 있다.
어쨌거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됐다. 제발 국익 최우선 주의와 국리민복을 앞세우는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야당만이라도 구태를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정치 지형의 초석을 놓아주기 바란다. 지난 대선때 통합이냐 연대냐를 두고 어느 일방이 비장하게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했듯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는가. 새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정당정치에서 성공한 야당이 곧 성공한 여당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한다. 북콘서튼가 뭔가를 할 때 운집하던 지지자가 허수(虛數)는 아니었구나 하는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랄뿐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력은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지만 유독 정치에서만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을 듣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러나 역으로는 또 원자력방호법 같은 중요법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하도 기대 이하의 정치를 하고 있으니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정치 피로감`을 넘어 아예 `냉소주의`가 편하다는 아이러니가 나오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