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그런데 러·일전쟁이 터지자 독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일본 내무성의 "한국영토로 의심이 가는 불모의 암초"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무성이 주도하여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에 독도를 강제편입했다. 그래서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희생된 첫 번째 영토다.   독도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패함에 따라 우리 땅으로 귀속되는 것은 당연했다. 승전국인 미국도 처음엔 그렇게 정리하려 했다. 미국 국무부가 작성한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 1~5차 초안에는 일본이 반환해야 할 섬으로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명기돼 있었다. 그런데 최종안에서 아무 설명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그머니 독도가 빠진 것이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 운운하는 빌미를 미국이 제공한 셈이다.   어쨌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후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JC)에 제소하겠다고 법석을 떨었을 때, 일본의 고지도 수집가인 구보이 노리보는 그가 소장한 지도를 공개하면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밝혔다.   구보이는 "더 이상 영토와 관련된 진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본인이지만 지도를 공개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공개한 지도 가운데 하나는 1901년 일본 문부성이 발간한 `수정소학일본지도(修正小學日本地圖)`이다. 이 지도에 일본 영토에는 여러 색으로 칠을 해놓았지만 울릉도는 색칠이 없고 독도는 아예 그려놓지도 않았다. 우리 독립기념관에 있는 신찬지지(新撰地誌)등 1886~1900년에 발간된 지도 7점 어디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표시는 없다.   그런데 2006년부터 시마네현이 1905년 독도를 강제편입한 날, 2월 22일을 지역주민들의 어업권에 대한 불만 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케시마의 날`로 지켜오다가 지난해부터 중앙정부 행사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 1월 24일 정기국회 개원 외교연설에서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것을 확실히 전할 것"이라는 포문을 열더니 급기야 28일에는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작성지침이 되는 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명기하도록 결정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도발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까지 확대해서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려는 비열하고도 비교육적인 작태이다.   독도 갈등의 본질은 일본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자기 세력권으로 삼키기 위해 러·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자기 땅으로 강제편입한 데 있다. 일본이 이런 어두운 역사를 무시하고 일반적인 영토분쟁인 것처럼 독도 문제를 대하는 것 자체가 기만이고 왜곡이다.   지난 1월 27일 장기간의 레닌그라드 봉쇄에서 살아남은 95세 고령의 러시아인 작가 다니엘 그라닌이 독일 하원 의사당 연단에 섰다. 그의 앞에는 요하임 가옥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총리, 상하원 의장, 연방헌법재판소장과 의원들이 앉아있었다. 그라닌은 의용군으로 싸우면서 장기간 봉쇄로 겪은 레닌그라드의 참상에 관해 회고했다 이 행사는 독일이 매년 1월 27일 `나치 희생자 추모일`에 갖는 행사다. 1996년 당시 대통령 로만 헤이초크의 제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자를 추모하고, 어두운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다짐하기 위해서다.   독일이 어두운 과거사를 반성하는 일은 어제 오늘만이 아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헌화 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묵념했다.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대인에게 올린 진심어린 사죄였다. 이를 계기로 독일-폴란드 교과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77년에는 슈미트 총리가 처음으로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는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행사가 이어졌다. 1982년 다시 기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이전 정권의 성과는 부정하지 않고 계승되었다.   지난해 8월 20일 메르켈 총리는 다카우 강제수용소 기념관을 방문해서 "젊은이들은 지난날 독일에 의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하며, 어둡고 부끄러운 기억들이 다음 세대에 꾸준히 전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4일에는 가욱 대통령이 프랑스 중부 작은 마을 오라 두르 쉬르글란을 찾았다. 1944년 6월 10일 나치 친위대가 이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러 642명이 숨지고 6명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가욱 대통령은 "이 마을에 일어난 범죄는 독일 정부 명령으로 독일군이 저지른 것"이라며 용서를 구했다.   지난해 독일 검찰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93세의 나치 전범을 체포했다. 함께 붙잡힌 다른 점범도 92세, 93세의 노인이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서라도 반인륜적 역사의 죄인은 반드시 찾아서 처벌한다는 독일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역력하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거 전 서독 대통령은 1985년에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이 멀게 된다"며 "우리 모두가 과거를 떠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일본이 정상 국가가 되려면 먼저 침략전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독일은 가르치고 있다. 독일은 나치의 침략과 만행을 철저히 반성하고 청산함으로써 전후처리의 모범을 보이고 유럽을 움직이는 EU의 지도적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베총리와 정권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망언·망동을 많이도 했다. 그러나 식성이나 언어적 유사성은 고사하고 일반 정서나 사고방식 면에서 우리와 누구보다도 가까운 일본이요, 또 앞으로 동북아 지역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거나 협력을 확대해 가는 데 동반자로서의 이웃이기에 우리는 일본이 독일처럼 거듭나 동북아와 세계 무대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란다.(2014.4.3)
최종편집:2025-07-11 오후 04:42:24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