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실천, 학문의 균형점을 찾다
성주는 자연 지리적 여건에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유교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즉 영남문화의 근간적 배경이 되어 온 자연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낙동강과 그 지류인 가천, 이천, 백천이 흘러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산가야의 고토이면서 가야산을 중심으로 꽃피웠던 불교문화가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그 문화적 자양분이 충분히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16세기 이래 영남의 선비들은 성리학적 향촌지배질서와 새로운 선진적인 농법 및 `산림(山林)` 지향성으로 인해 해안 보다는 강안, 강안보다는 계곡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한 결과 낙동강의 본류와 그 지류의 상류역에 조선시대 영남학파를 대표했던 명문·거족들의 동성촌이 많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낙동강의 강안에 위치한 성주지역도 이러한 경향에 따라 다수의 동성촌이 형성되어 선비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있어 성주의 지역적 특색의 하나는 경상도를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우도로 나눌 때 낙동강의 오른쪽으로 경상우도에 속하나 그 지역적 위치로 말미암아 경상좌·우도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인 특색은 조선중기 이후 성주의 학문적 성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성주는 좌도의 이학적(理學的)인 전통을 앞세운 퇴계학파와 우도의 실천과 실용을 중시하는 남명학파의 사상이 함께 공존하는 특별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주를 대표하는 선비들인 동강 김우옹, 한강 정구, 한주 이진상, 심산 김창숙 등이 높은 학문적 수준에 기초한 유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선비정신을 기반으로 실천적인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인물들이라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양강 시대를 열다
동강 김우옹
동강 김우옹은 어려서 이미 퇴계와 남명과도 교분이 있었으며, 형인 김우굉(金宇宏)은 일찍부터 남명의 문하에 있었으며, 동강과 함께 퇴계에게 서신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그는 20세에 교수로 성주에 있던 덕계 오건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때 한강과 함께 하였다.
동강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실제적으로 퇴계에게서 가르침 받기보다 덕계, 남명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퇴계는 평생동안 한 번 찾아 뵙고, 그에게 서면으로 몇 번 왕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강은 퇴계에 대한 존경의 자세를 늘 견지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한강은 그의 만시(輓詩)를 쓰면서 "퇴계의 정맥을 평생동안 우러러 보았고, 산해의 고풍을 특히 흠모했네"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동강의 학문은 분명 남명에 가까웠으나 퇴계와 남명 모두의 학문적 특성을 아우른 인물로 볼 수 있다.
동강의 학맥은 그의 후손 중재 김황이 연대순으로 작성한 급문록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모두 56명이 실려 있다.
이들 문인의 거주지역은 대개 성주를 중심으로 대구, 진주, 회령, 함양, 예천 등의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거주지인 성주에 거의 60∼70%에 가까운 대다수의 문인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대구에 문인들이 많았다.
한강 정구
한강 정구는 덕계·퇴계·남명의 문하를 차례로 출입하면서 학문을 닦았으며, 광해군 초 정인홍과의 절교로 퇴계학파에 편향되었고 또 조목·김성일·류성룡 등 퇴계의 중요 제자들보다 가장 늦게까지 생존해 있었으므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으며, 또 그 거주지가 경상좌·우도의 중앙인 성주에 있었으므로 퇴계·남명 양 학파를 융합하는 새로운 기점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17세기 전반 성주일대는 한강과 여헌 장현광에 의해 `한려학파(寒旅學派)`가 형성되었으며, 이들은 퇴계 이후 뚜렷한 학문적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안동권을 대신하여 영남의 학문적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정구는 서울 출신의 허후·미수 허목을 제자로 둔 데서 그의 학통은 영남의 여헌과 근기지방의 미수로 계승되어 갔다. 즉 한강의 생존시 성주는 영남학파의 중심으로서,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인 퇴계·남명학파를 통합하여 그 학통이 여헌과 미수를 중심으로 전자는 성주·인동에서 경주권으로 확대되어 갔고, 후자는 서울근교를 기반으로 하는 근기학파를 확립시켜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다음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