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가까이 오니 고향에 벌초 가는 것이 1년 중 큰 행사다. 금번 일요일에 한다는 통보를 받고 하루 일찍 서울을 나서니 전국고속도로는 지체와 서행의 연속이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풍경으로 평소보다 2배 이상 걸려 도착하여 그 이튿날 조상의 산소가 있는 염속산에 사촌과 같이 가면서 모처럼 집안 대소사 이야기를 하는 가족시간을 가졌다.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운동 겸 가는 길목은 너무나 편안하고 맑은 공기에 주위에 만나는 사람이나 고향풍경은 너무나 좋았다   옛부터 산소의 무덤을 유택(幽宅)이라 부른다.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란 뜻이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침(陵寢)이라 한 것도 `사후에 편히 쉬는 집`이란 의미다. 무덤은 선사시대부터 보호·미화·추모란 세 가지 측면에서 중시됐다. 사시사철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며 봉분이 유실되거나 멧돼지 등 산짐승이나 해충이 사체를 훼손하는 것을 막고자 돌로 봉분을 쌓거나 치장했다. 조경의 일환으로 봉분과 묘역에 잔디를 심은 뒤 그 바깥에는 나무를 심었다. 여기 무덤 주위에 심는 나무를 묘지목이라 부른다. 묘지목은 무덤 속으로 뿌리가 침범하지 못하고 나무 그늘로 인해 잔디가 죽는 피해를 막고자 가급적 무덤에서 멀리 떨어뜨려 심는 것이 원칙이다. 무덤에 한두 그루 심는 묘지목으로는 제사 때 쓰는 향을 구하고자 향나무가 많았다. 수종마다 땅의 기운과 바람의 흐름이 나무의 생태적 기운과 맞아야 하니 배롱나무, 소나무 등이 있다. 특히 붉은 꽃이 100일 이상 피는 배롱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해 충신이나 열사, 선비의 무덤에 심었다. 그래서인지 고향의 산소 주변이나 서당, 사찰 등에 요사이 배롱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특히 대가면 뒷개의 숭조대 주변과 성주의 관문인 성주대교에서 성주읍 대흥삼거리(성밖숲)까지 국도30호선 13km구간에 가로수로 식재된 배롱나무가 만개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름다운 배롱나무 꽃길은 무더운 여름 내내 상쾌한 꽃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어 주말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성주군은 아름다운 도로경관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선 배롱나무는 참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배롱나무, 목백일홍, 백양수(간지름나무), 원숭이가 떨어지는 나무, 등등이다. 붉은빛을 띠는 수피 때문에 나무백일홍(木百日紅), 백일홍나무 또는 자미(紫薇)라고도 한다. 국화과에 속하는 초백일홍(草百日紅)인 백일홍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배롱나무는 여름 내내 꽃을 피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배롱나무 꽃은 열흘이 아니라 1백일을 간다. 한번 핀 꽃송이가 1백일 동안 계속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꽃들이 연이어 수차례 피어난다.   순천 송광사의 배롱나무 꽃길, 연못에 담긴 개심사의 배롱나무, 속초 신흥사와 고창 선운사, 안동의 병산서원과 육사로, 울진의 온천길의 가로수, 담양의 명옥헌 경내의 배롱나무 정원은 유명하다. 배롱나무는 사찰 앞마당 나무로 불릴 정도로 고찰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고찰이나 오래된 종택, 사당, 서원, 정자 등에는 왜 배롱나무를 심었을까. 해마다 껍질을 벗으며 매끈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사찰에 심는 것은 출가 수행자들이 해마다 껍질을 벗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의 욕망을 떨쳐버리라는 의미다. 선비의 거처인 종택이나 서원, 정자에 심은 뜻은 배롱나무처럼 깨끗하고 청렴한 성품을 닮으라는 것이다.   배롱나무는 자미수로 불렸다. 자미궁은 천제(天帝)가 머무는 곳으로, 북두칠성이 그 주위에 배치돼 있다. 세계의 중심이 자미인 것이다. 중국의 당나라는 핵심 권력기관인 중서성·한림원을 자미성이라고 했으며, 이곳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배롱나무 꽃은 끝없이 배출되는 인재를 뜻하기도 한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일편단심을 상징한다. 사육신 가운데 한 분인 성삼문은 이 꽃을 좋아해 `백일홍`이라는 시를 남겼다. 여섯 장의 꽃잎과 여섯 장의 꽃받침을 가지고 있다. 주름 잡힌 꽃의 모양은 붉은색을 한층 돋보이게 해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배롱나무 여섯 장의 꽃잎, 여섯 개로 갈라지는 열매는 우연이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숫자와 같다. 후손들이 성삼문의 묘 앞에 배롱나무를 심은 것은 조상에 대한 붉은 마음의 표상이다.   그러나 배롱나무의 꽃이 진 뒤에는 매끄럽고 앙상한 줄기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곧 모든 것을 미련없이 내준 무소유 상태가 된다. 절에서 배롱나무를 즐겨 심는 까닭이다. 배롱나무는 줄기의 한 부분을 간질이면 작은 가지들이 웃음을 참는 듯 흔들린다는 뜻에서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배롱나무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어촌에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해마다 마을에 내려와 처녀를 한사람씩 잡아갔다. 한번은 제물로 바쳐질 처녀를 연모하던 이웃 마을 청년이 처녀를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청년은 처녀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이무기의 목을 베었는데, 두 개만 벤 상태에서 이무기가 도망쳐 버렸다. 처녀는 이 청년을 평생 반려자로 모시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무기의 나머지 목 하나를 베어야 한다며 배를 타고 이무기를 찾아 나섰다. 청년은 떠나기 전 "내가 이무기 목을 베면 배에 하얀 기를 내걸 것이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 것이오"라고 말했다.   처녀는 매일 기도하며 청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1백일이 되던 날 청년의 배가 돌아오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하지만 깃발이 붉은 색임을 확인하고 처녀는 자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깃발은 이무기가 죽으면서 피를 내뿜어 붉게 물든 것이었다. 청년은 가슴을 치며 처녀를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가에서 자란 나무에 붉은 꽃이 1백일 동안 피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평생 바람을 피우던 미운 남편이 죽자 아내가 남편의 묘 옆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배롱나무 꽃은 향기가 없고 더운 여름에 백일 동안 질리게 피는 까닭에 바람둥이 남편이 죽어서는 향기 없는 여자와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백일 동안 괴로움을 당해보라는 뜻이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옛 어르신들은 나무줄기가 매끄럽기 때문에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대갓집 안채에는 배롱나무를 심지 않았다. 디딜방아가 남녀교접을 연상시킨다 하여 집안에 들이지 않고 골목어귀에 두었던 이유와 같다.   목백일홍이라는 한자 이름보다는 배롱나무라는 우리 식 이름이 참 예쁘다. 혀가 절로 돌돌 말린다. 그 어원은 `백일홍`에서 찾을 수 있다. 백일홍에서 배기롱-배이롱-배롱으로 이어져 배롱나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유추되며 참 아름답다.   선비의 거처인 종택이나 서원, 정자에 심은 뜻은 배롱나무처럼 깨끗하고 청렴한 성품을 닮으라는 것이고, 사찰에 심는 것은 출가 수행자들이 해마다 껍질을 벗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의 습성이나 욕망을 다 떨쳐버리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요즘은 배롱나무를 가로수나 정원수 묘지목으로도 많이 심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성품도 본받을 일이다. 특히 지도층 인사들이….
최종편집:2025-07-11 오후 04: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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