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아침, 나는 재단 사무실에 출근하기 위해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는 우리 아파트 현관 앞에 아직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더니 얼른 내려서 우리 내외를 부축하여 안전하게 태워주었다. 과천에서 우리 집사람을 내려주고 나는 계속해서 이 택시를 타고 양재동에 위치한 aT센터까지 왔다. 택시 안에서 이 택시 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자기의 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으나 어머니는 93세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계셔서 날씨가 좋으면 전철을 타고 천안으로, 온양으로, 춘천으로 나들이도 하신다는 것이다. 그 홀어머니를 모시는 일에 이골이 난 이 택시 기사는 우리 나이든 승객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모신다는 것이다. 이제 오십대 중반에 접어든 듯한 이 택시 기사 같이 친절한 택시 기사를 나는 그동안 별로 본 일이 없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택시 기사는 상냥하지 않고 무뚝뚝하다. 택시를 탄 손님이 어디로 가자고 목적지를 얘기하면 "예, 알겠습니다." 아니면 그냥 고개라도 끄덕여 주면 우리 손님들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안심할 터인데, 불행히도 보통 택시 기사 대부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다 벙어리는 아닐 터인데 말이다. 거기다가 걸핏하면 손님과 요금 시비도 벌인다. 손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목적지를 바로 가지 않고 빙빙 돌아서 가는 경우도 있다. 자기들의 영업권을 벗어나 분당이나 수원 등지로 가자고 할 때 할증료를 부과하는 지점조차 택시 기사마다 다르다. 이런 경우 어떤 택시 기사는 떠날 때부터 할증료를 부과한다. 그건 위법인데….
내가 택시 요금을 지불하면서 잔돈을 거슬러 받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택시 기사도 드물다. 부득이한 경우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하는 때가 있지만 그렇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이벤트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택시 기사들은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함은 물론 보다 친절해야 할 것이라는 명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불어 사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실천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세상을 명랑하고 밝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또 대개의 경우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일에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어서 좋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친절한 봉사`, 이것이 근무조건의 기본일 것이다. 다행히 비행기의 승무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모두 친절하고 상냥하다. 대화 중에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 좋은 일인가? 은행 창구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직원들,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들도 상대적으로 친절한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공직자나 교육자들은 친절이란 단어와 매우 거리가 먼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부류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는커녕 그 목이 빳빳하기를 비길 데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일을 저해하는 현상 중 하나이다.
문명이 우리보다 더 발달한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종업원들에게 전체 요금의 10~20%의 팁을 지급하면서 베푼 친절에 대한 보답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당히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팁 문화는 거의 정착되지 않고 있다. 오늘 아침에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준 그 초면의 택시 기사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2,000원의 팁(전체 택시요금 14,000원)을 얹어 주었다.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배려라고 할 수 있으나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일이천 원을 더 줄 것을 하는 가벼운 후회를 했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그 택시 기사에게 내 고마움을 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그 택시 기사를 만나게 되면 이번에 좀 넉넉하게 팁을 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