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60년 전 나의 대학 시절의 일이다. 충치를 앓았는데 너무 아파서 경제적 형편은 안 되었지만, 수원 시내 치과의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프다는 이의 중간 부위를 파내고 살균을 한 다음 껌 같은 물질로 때웠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그곳이 아파서 같은 치과병원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그 환부를 더 깊이 파고 며칠 동안 살균 작업을 하더니 아말감으로 충전하고 금속 크라운을 씌우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을 마치는 마지막 날 치과의사가 아래위 치아가 잘 맞는지 테스트를 하던 중 간격을 맞추기 위해 반대쪽 멀쩡한 어금니를 기계로 갈아내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으로 `참 어처구니없는 치료방법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그 시절의 치과의사는 참 희한한 재주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이창용 치과).
그로부터 한 20년 후 내가 여의도에 살고 있을 때 또다시 어금니에 고장이 생겨서 가까이에 있는 소문난 치과의사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먼저 잇몸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위쪽을 먼저 수술하고, 한 보름 후에 아래쪽 잇몸도 수술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상당히 고통스럽고 불편한 큰 수술이었다. 이걸 마치고 나더니 아래 위 어금니 중에서 시원치 않은 것들을 모두 뽑아 버렸다. 반년이나 걸려서 발치 작업이 끝나고 위아래 어금니를 몽땅 틀니로 해 끼웠다. 다행히 위아래 앞니들 몇 개씩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서 거기다가 이 어금틀니를 거는 비교적 큰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치료비, 수술비, 틀니 값으로 돈도 꽤 많이 들었으나 공사가 잘 끝나서 한동안 치아 문제를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치과의사가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나종만 치과, 안규소 치과).
그 후에도 나는 다른 치과병원을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스케일링도 하고 치료를 받기도 했다. 몇 해 전에 이에 별 이상은 없었으나 잇몸이 수축하여 많이 내려앉은 것 같아 치과의사에게 그 점을 살펴봐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그 치과의사가 내 어금틀니를 살펴보더니 이무 말없이 틀니를 1주일간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1주일 후 치과병원을 찾아갔더니 아래위 어금틀니에다 금속 크라운을 씌워서 나에게 끼워주는 것이다. 그제서야 이 치과의사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한 30년 지난 아래위 어금틀니가 많이 닳았고 또한 나이가 들면서 위아래 잇몸이 많이 수축했기 때문에 음식을 잘 씹는데 문제가 있어서 어금틀니에 크라운을 씌웠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정말로 나는 음식물 씹기가 훨씬 편해졌고, 그 전에 잘 못 먹던 딱딱한 것들, 예컨대 당근, 무, 갈비 등도 아무 어려움 없이 잘 씹게 되었다. 세 번째 찾아간 이 치과의사의 별난 재주 덕에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잘 씹을 수 있게 되어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다. 한편으론 삼십 년이나 된 플라스틱제 어금틀니에 크라운을 씌웠으나 이 틀니가 몇 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박성호 치과).
세월 따라 치과 기술도 자꾸만 좋아지니 우리는 좋은 세상을 만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