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성주에서는 성주의 모든 힘을 결집한 자랑스러운 생명문화축제가 열렸다. 우리 재경성주문화사업후원회에서는 축제 전 기간에 동참할 수는 없더라도 축제 개회에 앞서 세종대왕자태실에서 개최한 생명문화축제 선포식에 동참해서 그 충천하는 열기를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참여했다. 선포식을 마친 후 성밖숲 축제장에 마련된 체험전시관을 둘러보고 아쉬웠지만 예정대로 오후 5시에 상경했다.  이번 축제장에서는 예년에 보지 못했던 규모나 다양성을 느꼈고 그중에는 성주의 볼거리로 잘 다듬어 키워나갔으면 하는 과제도 보였다. 촉박한 시간관계로 하나하나 뜯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고 죄송할 뿐이다.  체험전시장에 마련된 재경향우인 이옥호 여사의 궁중상화 전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궁중 의궤에 의거 이어오는 궁중상화를 앞으로 우리 고향에서 맥을 이어가도록 해야겠다는 작가의 집념과 작년에 처음 고향에서 발표를 하고 성주가 가진 사적들과 연계해서 볼거리를 만들어 보자라고 하는 뜻있는 분들의 기대에는 많이 미흡했다. 하지만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짧은 시간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전시장을 마련한 것은 매우 뜻이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문화축제 선포식에 동참할 회원들이 모처럼 만든 시간이라 서울을 출발해서 선포식 현장까지 가는 중간에 두 개의 문화탐방코스를 마련했었다.  하나는 초전면 소성동 소재 원불교 성주성지, 또 하나는 가까운 월곡동 명곡(홈실)마을이다. 원불교 성주성지를 찾은 것은 국내외 700여개소의 교당을 가진 엄청난 세의 신흥종교라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는 알지만 어떤 종교이며 성주성지가 어떤 곳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치 않다. 마침 우리 후원회의 원로회원이신 송태선 고문님께서 원불교와 성주성지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주시고 성주성지 김원명 교무님께 우리들의 탐방을 주선해주셔서 원불교에 대한 이해나 성주성지의 의미에 대해서 들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깨달음을 얻고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根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기치 아래 새 세상 구제대책의 법어(法語)를 발표하면서 창교를 하셨다고 한다.  이어서 1919년에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였는데 이것이 곧 교단의 얼이 되었다고 한다. 금년이 창교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성주성지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 대종사가 열반하신 후 1943년 정산 송규 종법사가 소태산 대종사께서 설정하신 교화 교육 자선의 3대 교단 방향을 근거로 하여 교당, 학교, 병원 등 확대해서 오늘의 원불교를 이룩하셨다고 한다. 이 정산 송규 종법사가 비록 2대 교주이기는 하나 오늘날 원불교의 기틀을 확립하신 어른이시다.  이 정산 종법사의 탄생지가 소성리 구성마을이고 성장터가 소야마을, 구도터가 박실마을이라 증산 종법사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원불교 성주성지와 원불교 삼동연수원(성주읍 금산리 소재)을 건립해서 정산 종법사의 뜻을 기리게 되었다 고한다. 우리가 말로만 들었던 소성리의 성주성지를 탐방하게 된 것은 매우 뜻이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다음 월곡동 명곡(홈실)마을을 찾았다. 벽진 이씨의 창성연원지는 시조공 벽진장군의 유허지로 경수당이 자리한 벽진 수촌인데 7세 방화(芳華) 선생께서 지금부터 900년 전에 입향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며 벽진 이씨의 요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문화행사에 자주 동참해 주시는 완산정 선생의 13대 종손 종건 선생과 탐방을 상의했던 바 함 께 동행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먼저 선생의 안내로 산화 이견간 선생을 주벽으로 모신 유서 깊은 문곡서원(汶谷書院)을 찾았다. 문곡서원은 1750년 조선 영조때 창건한 것인데 그후 중수 신축해서 현재는 6동으로 구성되었다. 선생을 숭모하는 유림들의 절실한 충정을 모아 건축된 것이라 선비들의 체취를 느끼게 했다.  산화 이견간 선생은 고려 충열 충선 충숙왕 3조에 걸쳐 대제학 또는 지방장관으로 활약하신 정치 및 행정가로 뛰어난 학문과 인품을 갖춘 어른이시고 특히 여말의 어려운 대원(對元)외교를 맡아 많은 업적을 쌓으셨는데 당시 공녀(貢女)제도의 슬픔을 읊은 두견시(杜鵑詩)로 원제(元帝)를 감동시켜 공녀를 크게 감소시켰다는 등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셨다고 한다.  다음 완정고택(浣亭古宅)을 찾았다. 이 완정고택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3호로 지정되어 깨끗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었다.   완석정 이언영(李彦英) 선생의 7대손 이존영 선생(1787-1849)이 건립하였으며 현재 6동이 남아있다. 기품과 편안함을 함께 갖춘 집으로 효렴과 충효와 절의로 이어진 명가라는 평판을 듣고있는 고택이다. 완정고택은 완석정 선생의 부조묘를 모시고 있는 벽진 이씨 완석정파의 바로 종택이다. 완석정 이언영 선생은(1568-1639) 정한강 선생, 장여헌 선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시 창의(倡義)에 앞장서고 선조때에 식년시 갑과에 급제해서 승지 청주목사 등 역임하신 학덕이 높으신 어른이시다.  홈실마을을 탐방하면서 특별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유림단 대표 독립청원서 이른바 파리 장서 서명사건에 연루된 몇 분의 애국지사가 계셨다. 이덕후 선생과 손자 이정기 선생은 조손이 서명하여 당시 유림에 큰 감동을 안기셨고 특히 이정기 선생은 북경에서 학업 중에 독립의열단에 가담, 애국지사들과 연계해 활동하다가 장진홍 의사와 함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에 연류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 뜻을 기리기 위해 선생을 숭모하는 고향 후배들이 마음을 모아 홈실마을 어귀에 세워놓은 공적비를 돌아보면서 거룩한 뜻을 되새겨 보았다. 마침 비문을 우리 후원회 고문이신 이윤기 박사께서 찬하시고 건립추진위원장이 우리 후원회 여상길 부회장의 선친(여철연 선생)께서 맡으신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투어를 마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중에서도 마음을 써주신 송태선 고문님, 원불교 성주성지의 김원명 교무님, 완정고택의 이종건 회장님, 문곡서원의 이재수 선생, 이문기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시간이 촉박해서 자세한 말씀과 깊은 이해를 더 갖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문화탐방을 마쳤다. 항상 문화투어에는 반드시 참여해 격려해 주시는 원로회원 이하영 명예회장님, 원로에 고생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끝으로 동참해주신 회원, 집행부 여러분들의 수고에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최종편집:2025-07-15 오전 09: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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