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간호사인 에일린 레메디오스(55)는 얼마 전에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자전거를 타고 왕진 갔다가, 환자 집 밖에 세워둔 것을 도난당한 것이다. 화가 치밀었다. 값비싼 것이어서가 아니라, 볼품없는 낡은 자전거지만 절친한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어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누가 술에 취해 잠깐 빌려 간 것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유머 조의 쪽지를 써서, 도난당한 지점에서 가까운 가로등 기둥에 부쳐 놓았다. "부탁입니다. 자전거 돌려주세요. 사랑만 받아왔기 때문에 주인이 없으면 몹시 무서워해요."  이튿날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가 봤더니, 거짓말 같이 제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은 도둑이 사과 편지와 함께 새 자물쇠로 가로등 기둥에 묶어두었다. 열쇠는 환자 집 현관 매트 밑의 봉투에 넣어 뒀다고 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마음 고쳐먹은 도둑으로부터. 추신 : 자전거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답장 쪽지를 붙여 놓았다. "자전거 빌려갔던 다정한 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돌아와서 기쁘다고 하면서 말하네요. 즐거운 시간 보냈다고요."  서양인들의 장점 중 하나는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다고 한다. 자갈길 위를 지날때마다 덜컥거리니 피곤한 인생이 더욱 고단해 진다.정치가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유머와 웃음의 선사이다. 영국 자유당의 유명 정치인 하코트는 "유머는 인생의 소금이며 의회의 방부제다. 그 진묘한 처방으로 상처받은 사람은 물론 원망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윈스턴 처칠이 세기의 정치인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유머 때문이기도 하다. 처칠의 유머 중 잘 알려져 있는 것 중의 하나가 2차대전 직후, 노동당 총리로서 철도와 은행 등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애틀리와 의회 화장실에서 만나 나눈 대화다.  주요산업 국유화 문제로 몹시 다투고 있던 애틀리를 처칠이 화장실에서 만났다. 애틀리 옆 자리밖에 빈 자리가 없음을 보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다른 자리로 가서 기다렸다가 용무를 봤다. 이를 본 애틀리가 왜 그러느냐는 뜻으로 농담을 건넸다. "`물건`이 적어서 보여주기 싫어 그런가 보군요?" 그러자 처칠이 답했다. "천만에요, 당신은 뭐든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주장하니까요"라고.  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집회에 나가 연설이나 강연을 하고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와 숨막히는 담판도 벌여야 한다. 그들에겐 논리정연한 말솜씨도 중요하지만 위트나 유머로 상대방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링컨 대통령도 유머의 달인이었다. 링컨이 어느 날 반대당 의원으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했다. "당신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입니다." 링컨은 대수롭지 않게 맞받았다. "그래요? 내가 정말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면, 왜 하필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달고 다니겠소?" 링컨은 못생겼지만 스스럼없이 용모의 약점을 거론했다. 용모 따위는 진작에 극복했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진다.  정책에 대해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또 경쟁자와 반대자가 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가 그 다툼의 와중에도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되려면 그 다름과 미움을 기품 있는 유머로 표현해 내며 유쾌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어야 한다.  장 크레티앙은 1993~2003년 캐나다 총리직을 세 번 역임하면서 무역자유화를 확대해 무역흑자를 이룬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심각한 언어장애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왼쪽 귀가 들리지 않고, 안면근육 마비로 입이 비뚤어져 발음이 어눌했다. 그런 그가 선거유세를 다닐 때 일이다. 열정을 다해 연설하는 그를 향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에게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점입니다." 그때 크레티앙은 온화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나는 입은 비뚤어져도 거짓말은 안 합니다." 신체장애로 인한 고통을 솔직히 시인한 그는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분노와 증오를 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넉넉함과 힘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유머이고, 그 여유와 힘의 증명을 통해 국민의 사랑과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비판을 할 때도 촌스러운 설화 수준의 말이 아니라, 유머를 섞어 가며 여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격이 오른다.  한 간호사의 익살스러운 쪽지가 자전거 도둑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증오와 초조함을 담은 거친 말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우리 조상이 가르쳐준 지혜다. 우리 남과 북이, 여와 야가, 아니 우리 모두가 살벌한 막말들을 삼가고, 말에 유머가 오가는 여유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살아가기 팍팍한 세상에서. (2015.5.28.)
최종편집:2025-07-15 오전 09: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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