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어려울 때도, 고향만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따스한 보금자리였습니다!』
농촌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서, 교육을 마친 후 다시 한번 정든 고향의 품안에 정착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인공은 바로 대가면에서 「개풍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성룡(50)·남연숙(46)씨 부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대가면 용흥리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이 씨는 대가초교·성주중·성주농고(24) 출신으로, 학업을 마친 후 서울 모 건설회사에서 8년여간 근무한 후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한 차례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 후 어려운 시기를 겪던 중 고향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낯선 타향이 아닌 정든 고향에서의 새 출발을 권유받아 지난 86년 한우 3마리·젖소 11마리로 시작, 현재는 착유소 45∼70두를 비롯한 1백20두 규모의 농장주가 됐다.
『초기 정착까지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 씨는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노동력 부족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변의 친구와 형님들의 도움이 컸다』며 고향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3년 전 성주군낙우회 회장도 역임한 바 있는 이 씨는 『그러나 일부에서는 성주하면 배타성이 강해서 외지인은 정착하기 힘들다고도 하는데, 축산만큼은 차별이 없다』며 『스스로 겪은 어려움을 발판으로 고향과 객지에서 온 친구들도 도울 수 있는 한 최대한 돕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고향에서의 성공적 정착의 실례의 하나는 바로 목장의 성공만큼이나 빛을 발한 자식농사로, 부인 남연숙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는 이 씨의 딸은 대성초교·성주여중고를 거쳐 연세대 임상병리과에, 아들은 대성초교·성주중·명인정보고를 거쳐 상주대 축산과에 입학이 결정되어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학교에서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라고 밝히는 이 씨는 『아들은 물론 딸도 2주에 한번 집에 내려 올 때면 농장 일을 몸소 체험하게 하니 주변에서는 애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촌생활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부모님의 어려움도 알고, 사회생활을 견디는 힘이 되줄 것으로 믿는다』며 『요즘 교육 때문에 두 집 살림한다는 사람도 있다는데 부모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자녀의 탈선을 조장, 올바른 교육이 어려운 것을 실제로 많이 봤다』고 전했다.
실제로 아들에게도 『내 사업을 물려받는다면 농장을 경영하게 하겠지만, 만일 직장을 가질 경우에는 배움으로 부모로서 뒷바라지는 끝으로, 농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밝혀왔다』고 한다.
주변의 많은 친구와 이웃과도 함께 하고 싶지만 참외농사나 직장인의 경우 해가 지면 일과가 끝나는 반면 목장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에나 일과가 끝나다보니 자주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운 점도 많다고 한다.
이에 부인 남 씨도 『고향에서 맘 편하게 살 수 있어 좋지만 시간에 매여 장기간 집을 비울 수 없으니 집안 대소사에 제대로 참석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래 『직장이 힘들다보니 고향에 정착하는데 사전준비 없이 「저 푸른 초원 위에∼」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현실은 다르다』며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앞세워야 할 것』을 당부키도 했다.
끝으로 이 씨는 『지역이 살고 농촌이 진정으로 잘 사는 돌아오는 농촌이 되고, 농사가 3D업종이 아닌 희망이 있는 농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대에서만 농사를 끝내고 자식은 힘드니까 절대로 안 시킨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내 자식이 물려받는다면 내 고생의 1/3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며 『아버지가 씨앗을 뿌리고 그 자식이 키우고 손자가 열매를 거두는 농촌이 되어야만 도시민도 부러워하는 잘 사는 농촌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