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7일 제76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해 항일 독립운동 순국지사 해사 김정호 선생이 국가보훈처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제5332호)을 추서 받았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운 해사 김정호 선생의 위업을 기려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윤동) 215번지에서 1871년 1월 13일 태어난 김정호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외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개척하기 위해 유안무 등과 중국 만주,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답사하고 국내로 돌아와 동지를 규합했다.
그러던 중 국내에 3.1 운동이 발발하자 김정호 선생은 동지들과 연합해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전국 유림이 독립선언에 뜻을 함께하지 못했음을 알게 됐고,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담에 유림들의 독립청원서를 제출해 유림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다.
김정호 선생은 각 지역 유림의 영수인 면우 곽정석, 간재 전우, 이강 유만식 등과 논의한 후 독립청원서를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전달할 것을 기획하고, 심산 김창숙 선생 등과 함께 각 지역 선비들의 서명을 받아 3월 10일경 파리로 출발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김정호 선생은 고향 윤동에 내려와 여정을 꾸려 파리로 출발하기 위해 성주 쪽으로 잠입하던 도중 가천면 양정리에서 폭사(暴死 : 갑자기 당한 사망) 당했다.
당시를 기록한 문건 등에서는 실족사 혹은 강도에 의한 피살로 기록하고 있지만 암살 당했을 가능성이 높고, 가족들이 위험에 노출 될까 객사로 기록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김정호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정호 선생의 막내자녀인 김영애(103)씨와 증손자인 김병환(66)씨에게 전달했다.
한편 김정호 선생의 자손들은 선생의 뜻을 기려 고향 윤동에 그의 호를 따서 `해사정`이라는 제실을 짓고 해마다 제를 올리는 등 큰 뜻을 이어가고 있다.
배우종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