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에게 많이 불러지는 우리 가곡으로는 이은상 선생 작사 박태준 선생 작곡의 `동무생각`이 첫 손꼽히고, 다음이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 보리밭 등이 있다. 긴 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맞게 되면 꽃피고 새싹도 나고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고 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대구 계성중학교에 근무하시던 박태준 선생이 젊은 시절 어느 날, 이은상 선생께 "내가 작곡을 할테니 노산 선생께서 가사를 붙여달라"고 하면서 사랑이 움트던 시절의 추억담을 얘기함으로써 이 국민가요가 탄생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추억담이 서린 곳이 신명여중 올라가는 청라언덕이고, 오늘날 `동무생각` 노래비가 곱게 단장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 성우회 음악동호회 21명의 회원이 지난 4월 23일 그 언덕을 찾아 노래비 앞에서 목청껏 소리를 높여봤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가곡의 산실인 청라언덕을 찾아 불러본 감회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 그리고 일제 초기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선각자 서상돈 선생, 오늘날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 토대를 만든 선대 이병철 회장의 발자취를 찾아보면서 그 어른들의 높은 뜻을 기려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계획했던 대구 투어를 마치고 숙박예정지인 국립공원 가야산, 해인사 관광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회원 상호간의 회포를 풀고 이튿날(4월24일) 이른 아침, 산책코스로 잘 알려진 `가야산 남산 제일봉`을 잠시 올랐다가 요즘 사드로 알려진 성주로 향했다.
성주에 들어와서 안동의 하회민속마을과 비견되는 한개민속마을을 찾았다.
안동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곳이 `서애 유성원 선생의 종택`이라고 한다면 성주한개마을을 대표하는 곳은 `응와 이원조 선생의 종택`이라 할 수 있다.
한개마을에 대한 문화해설사의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면서 마지막으로 종택을 찾았다. 종택의 전통을 지키시는 종손(이수학 선생)께서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이곳 성주에서는 이 종택을 대감댁으로도 부르지만 역사를 읽으신 외지분들에게는 북비고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응와 선생의 증조부, 돈재 이석문 선생께서 남기신 충절어린 북비의 일화가 있어서다. 조선시대 영조 임금때 비운의 사도세자 호위무관이었던 이석문 선생이 세손을 등에 업고 세자 사도를 구하려고 노력을 했으나 끝내 저세상에 보내게 된 후 낙향을 하고는 대문을 북쪽으로 내고 그 예를 다했던 얘기다.
세손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손자 규석 선생이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했을 때 정조께서 기뻐하시며 "너의 조부께서 큰 공을 세웠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배석하신 영의정에게 "지금도 북비가 있는가"라고 말씀하신 일화 말이다. 그래서 이석문 선생을 북비공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종손 이수학 선생은 우리가 가까이 알고 있는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이 열달 아래 아우님이라 소개를 하시면서 고택의 사랑방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 하고 준비해둔 음료를 대접해 주셨다. 나중에 문화해설사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수학 선생께서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하신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 귀띔을 해주었다. 다시 한 번 정중한 환대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렇게 해서 한개마을 투어를 마치고 이수빈 회장이 준비해둔 읍내식당에서 성찬의 점심을 했다. 지방문화재로 알려져 있는 근대주택 `만산고가`로 옮겨 쫓기는 시간이지만 성주문화원 도일회 원장이 우리나라에서 농업소득이 가장 높은 곳이며 1억원 이상의 조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900호가 넘는다는 얘기와 고래로 많은 인재가 배출된 곳이라며 퇴계 선생과 남명 선생의 학풍을 이어 한강학풍을 이루신 정구 선생, 이 나라 마지막 선비로서 유림을 대표했던 독립운동가이며 오늘의 성균관 대학 설립자인 심산 김창숙 선생, 초대 서울대학총장을 역임한 백농 최규동 선생, 아웅산에서 불운하게 유명을 달리한 서석준 부총리 등을 거명하면서 성주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귀한 설명이 있었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 성주가 자랑하는 국가사적 세종대왕 18왕자의 태를 봉안해둔 자태실을 찾았다. 조선조의 가장 존경받는 세종대왕께서 풍수지리상 나라안 최고의 길지를 찾아 왕자 모두의 태를 모아둔 곳이란 얘기와 왕자 한분 한분에 대한 문화해설사의 깊이를 가진 자상한 설명이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성주투어를 마치고 김천으로 나오는 길에 요즘 시끄러운 사드의 설치장소를 멀리서나마 바라보면서 마지막 방문처인 직지사를 찾았다. 이곳은 신라 불교 초창기에 도화상이 사찰이 자리하기 좋은 위치이니 라는 말씀에 따라 지어진 고찰인데 임진난 때 승병을 일으켜 크게 활약한 사명대사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라는 설명을 보았다. 마침 석가탄일을 며칠 앞두고 있어 여러 명의 젊은 승려들이 경내를 단장하느라 사역을 하고 있어 그 모습도 보기 좋게 느껴졌었다.
짧은 시간이라 자랑하고 싶었던 내 고향 성주의 여러 가지, 훌륭한 어른들의 발자취와 역사를 담은 유적들을 소홀히 지나친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다행히 함께했던 여러 회원들의 얘기가 처음 찾아본 성주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껴지는 것이 학문이 높고 문화를 소중히 하는 옛부터 선진된 고을이라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보람을 느끼면서 한결 마음이 기뻤다.
특히 이번 성주 투어를 돋보이게 해준 응와 선생 종택, 이수학 선생의 환대와 자손이신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이 배풀어주신 성대한 오찬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만드셔서 유서깊은 만산댁에서, 찾아주신 귀빈들께 성주의 어제와 오늘을 말씀해주시고 성주의 자랑인 참외 선물까지 곁들여 주신 성주문화원 도일회 원장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