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을까···` 어떤 대중가요 가사의 일부이다. 왜 이렇게 세월은 잘 가는가. 안타까이 가버린 세월을 생각하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스페인 민요 `세월은 잘 간다 아이아이아이(AyAyAy)`다. 정유년 새해 달력을 건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라니 허송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할 일이 생기는데, 그걸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하고 휘익 휙 가버리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많은데···. 자그만 교통사고로 무릎 인대를 다쳐 투병한지 5개월, 그 5개월이 지금껏 살아온 세월보다 길게도 느껴졌다. 5개월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그야말로 사변적(思辨的)이어야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 개념이었다. 사고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몸이 부실하니 행동은 자연 제약이 많고, 어김없이 가려는 세월은 애타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도 간다. 가는 세월이 참으로 무심하기도 하다. 때로는 내 인생살이 70여 년이 넘도록 살아온 세월이 헛되고 잘못 살았다는 회한이 왜 없을까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난 그 5개월이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공허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는 말이리라. 공허감은 차라리 나았으며 더 무서운 것은 무력감이었다. 내 일찍이 이렇게 가는 세월을 허망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혹여 있어도 내일을 위한 사고(思考)의 축적이겠거니 하며 억지로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번만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아마도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점점 짧아진다는, 유한 인생이라는 야릇한 강박 같은 것에 짓눌리는 탓이었으리라. 아직도 내 인생은 미완인데···.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1년···, 또 모여모여 10년 20년···그렇게 가버린 세월이 암만인데.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값진 날의 달력을 떼어내는 날이 그렇게도 서글펐다. 뜻 있고 값져야 할 날들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떨어져만 가는 날들이 내 폐부를 찔러댄다. 야멸차게 떼버리는 달력은 지는 낙엽이듯 갈가리 찢어져 허공에 흩날리며 떠나간다. 떠나가는 세월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 무력감은 어디에다 비할꼬. 찢기어 떠나가는 달력을 붙들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다. 허망하게도 가버리는 알토란같은 날들이 내 애원을 뒤로 하고 아스라이 멀어져만 간다. 나는 기어이 가버리는 날들을 붙들고 눈물 뿌리며 장송곡이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다. 허무히도 가버리는 날들 뒤에 엄습해 오는 공허감을 무엇으로 채울까? 가는 세월 허망한 것은 떨어져 나가는 달력만이 아니다. 꽃 피고 새 움트는 춘삼월이라 축제와 꽃놀이로 왁자지껄하다. 특별히 하는 일없는 일상사 중에도 지인들과 함께 매년 여의도 벚꽃 구경은 갔었는데, 금년은 여의도는커녕 가까운 뒷동산 꽃구경도 갈 수 없는 이내 몸이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꽃놀이와 축제를 소개하는 TV도 싫고 신문도 다 보기 싫다.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내 젊은 날 한 지인이 흥얼거렸던 독백이 불현듯 생각났다. 그는 방년의 소녀와 1년여를 이름 하여 러브레터를 주고 받으며 연애(당시는 그 이상 고상한 말이 없었다.)를 했는데 어느 날 절교를 당한 것이다. 그야말로 청순한 사랑, 플라토닉러브였지만 자기 마음과 같이 텅 비어버린 공허한 달밤이 그렇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가 달밤이 싫은 것처럼 나도 꽃도 새 움도 다 싫어졌다. 따뜻해지는 봄날이 더욱 그랬다. 영하를 오르내리던 겨울엔 그나마 웅크리고 있어도 음울한 생각만 들었지 가는 세월 원망할 겨를도 없었지만 따뜻해지니 뭔지 모를 불안과 초조가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춥기만 하여 웅크리고만 있으면 시간이 정지되는 줄 알았다. 그런 착각이 들었다. 동물의 동면 정도로 생각했으니 불안·초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봄이 오면 또 여름이 오고 그렇게 세월은 간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불안·초조의 진원이 되는 것이었다. 시간은 왜 가는가? 어느 날 인류 문명사에서 가히 파천황(破天荒)이라 할 만큼의 벽화나 유물이 발견됐을 때 모두 놀라 `···순간, 시간은 멈춘 타임머신이었다!`라고 소리친 적은 더러 있었다. 시간은 필요에 따라 일시적 유예는 없는 것이 우주의 섭리이고 질서인가? 어! 아니다. 지구촌의 질서일진 몰라도 우주는 아니다. 무한대의 우주공간에서의 시간의 개념은 지구와는 다르다. 인간이 개발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하루는 지구의 시간 1년과 맞먹는다고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말했다. 내 가는 세월의 탄식을 거창한 우주 얘기에다 슬쩍 끼워 넣음이 가당치도 않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생활이 서글퍼져 스치는 생각들을 적어본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가고 마는 것을······.
최종편집:2025-07-07 오후 01: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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