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법산 마을의 유래 □ 2회 오암서원 창건과 중건의 경시록 □ 3회 한강 정구 문하 입문 □ 4회 입향조 죽헌 최항경의 생애 ■ 5회 죽헌의 문집 및 시문, 유묵 □ 6회 장남 최은과 차남 최린의 약전 □ 7회 법산세고 편찬 □ 8회 영천최씨 역사인물과 현대인물 성주군에는 월항면 한개마을과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는 최씨 집성촌 법산마을이 있다. 하지만 법산최씨 집성촌은 지역에서 조금 떨어져 고령군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월항 한개마을과는 달리 사료와 집중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강 정구의 제실인 회연서원은 성주의 문화유적지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약 5km 떨어져 있는 오암서원은 법산최씨의 시조가 세운 서원으로 많은 인재들이 발굴됐으나 문화유적지로는 소외돼 있어 최씨 후손들에 의해 문집 등이 발행되는 정도이다. 이에 법산마을과 오암서원에 대한 탐구와 함께 죽헌 최항경의 생애와 사상을 심층취재함으로써 문화성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대내외에 알리고, 군민들에게 뿌리의 중요성과 애향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선생의 시문은 현재 4권 2책의 문집이 전하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선생 유사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선생의 저술 중 극히 일부분만이 남아 있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의 아름다운 말과 떳떳한 행실을 글로 써서 세상에 전할 만한 것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병자호란에 원고와 사적은 화재로 불타버렸다. 문집의 편찬에 대해 응와 이원조 선생은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각 권별 시문의 종류와 편수는 아래와 같다.  제1권 詩 : 五言絶句 竹軒 등 195수   (律詩 古詩 七言絶句 포함)  제2권 詩 : 七言律詩 등 65수   幽居雜詠 5수 등 65수   詩 總計 260수 挽 寒岡先生挽 등 27편  제3권 書 : 答李白川 등 4편 說 : 名二子說 등 2편 祭文 : 祭寒岡先生 2수 등 7편 箴 : 自警箴 1편 附錄 : 挽詞 24편 祭文 6편  제4권 記聞錄 遺事 등 13편   고손자는 묘갈명 청원문에서 "선생은 젊어서 대현인의 문하에 올라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며, 물러나서는 당시의 명현인 여헌 장현광 선생, 석담 이윤우 공을 비롯한 학우들과 서로 친교를 맺고 끝없이 왕래하며 학문을 강론했다. 유림과 후학들은 지금도 죽헌 선생의 인품을 서로 논하고 있다. 또한 등암공과 채공의 문장과 사간 이도장의 죽헌 선생을 통곡하는 시와 서원을 건립할 때 사림에서 올린 문장, 봉안할 때 제문은 모두 참고해 드러낼 만하다. 이에 그 대강을 기록해 묘갈명을 청하는 단초로 삼는다. 불초 현손(고손자) 진사 후대는 삼가 기록한다"고 했다. 죽헌 선생을 살펴볼 시와 예설, 기문록 등이 있는데, 묘갈명은 성호 이익이, 묘도비명은 대산 이상정이 지었으며, 문집의 서문은 서두에 언급했듯이 후대의 이원조가 썼다. 성호 이익은 퇴계-한강의 학맥을 미수 허목을 거쳐 근기학파로 계승한 실학의 종장이며, 대산 이상정은 퇴계-학봉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학맥 위에서 18세기에 우뚝한 학자이다. 이들 근기와 영남의 대표적 석학들의 서술은 죽헌의 학덕을 후세에 알리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되고 있다.  죽헌 시의 몇 가지 주제들  `대나무(竹)`(七言絶句)·`죽헌`(五言絶句)(七言律詩)  죽헌은 최항경의 옥호이자 자호이다. 그만큼 대나무를 좋아하고 가까이 했다. `죽헌` (五言絶句)에서는   窓畔竹 아름답고 성한 밭둔덕 대나무는  歲寒不改色 한겨울 추위에도 푸른 빛 변함없네  我思衛武公 나는 위무공을 사모하니  九十詩猶抑 구십에 억시지어 자신을 경계했네 최항경이 스스로 죽헌이라는 호를 지은 후 같은 제목으로 읊은 시다. 위무공의 고사를 인용해 죽을 때까지 대나무처럼 변함없이 성리학이 지향하는 삶을 살려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위무공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군주다. 55년간 재위하면서 95세의 수를 누렸는데, 90세가 넘어서도 억시를 지은 후 사람을 시켜 곁에서 수시로 읽게 하며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대나무(竹)`(七言絶句)에서는  此君孤節同淸聖 대나무의 절개 백이와 같으니  況復謙虛量在中 하물며 다시 겸손한 도량이 있도다. 라 했다.  그래서 `죽헌`(七言律詩)에서는  此君與我眞良友 대나무는 나에게 참으로 어진 벗  相對虛心日掩門 서로 마주해 마음 비우고 날로 문을 닫았네  대나무를 마주해 끊임없이 자성적 인간 자세를 추구하고 있다.   `오암`, `오암의 계정` (七言律詩) 법산마을 맞은편 냇물 건너에 오암절경이 있고 그 위에 앉은 정자가 계정이다. 그 정경과 함께 작자의 삶의 자세를 표현한 시들이다. `삼공의 귀함과도 바꾸지 않을 즐거움과 편안함`을 노래한 죽헌의 `자아의 세계`가 드러나고 있다. `전원잡흥`(五言絶句), `유거만영`(七言律詩) 전원잡흥은 15수의 장편시로써 작자의 전원생활의 전진면목이 펼쳐진다. "따뜻하고 배부름 귀히 여기는 바 아니지만 / 주리고 추움 또한 족히 한탄할 만하네" "시골의 노인들은 정성스레 따르고 / 농부들은 서로 얽힌 정을 나누네"라 해 선비이자 지주인 죽헌 자신의 생활 모습과 자족적 정감, 그리고 향촌의 서민·농부들을 향한 배려의(애민적) 시선을 기술해 놓았다. `유거만영`에서는 특히 작자가 자연 속에서 한가히 지내는 모습을 정성이 지극하게 표현해 놓았다. `감음(感吟二首)`, `남한산성의 강화소식을 듣고 분해서` 임진년 왜가 침입하자 학봉 김성일이 초유사(난리가 났을 때 백성을 타일러 경계하는 일을 맡아보는 암시 벼슬)로서 초유격문(전투 상황)을 보내옴에 초야에 선비로서 깊은 충성심을 느끼며 쓴 시이다. 임진란 피란 중에 죽헌의 둘째 아들 매와가 태어났으며 그 고난의 참경을 누르고 그려낸 충정이 `감음`이란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강화소식은 노년의 죽헌에게 뉘우치고 한탄함과 당혹스러움을 가져왔다. 두 아들을 의병에 보내고 비장한 마음을 가눈 어버이로서 아들이 전장에 가지 못하고 돌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취재3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습니다.
최종편집:2024-05-21 오후 01: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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