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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현 학
행복드림공인중개사 대표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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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스승께서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킨다. 그리고 붓에 묵을 듬뿍 찍어 일필휘지한다. '爲星湖 李炫鶴先生 海不讓水 障山 朴都一'
세종대왕의 어명이 내려졌다. 지관들은 전국을 답사해 왕자의 태를 봉안할 명당을 찾으라는 명이었다. 왕의 명에 따라 지관들이 조선팔도로 명당을 찾아 흩어졌다. 한 지관이 경상도 성주에 다다랐다. 지명에 星자가 들어 간 곳은 성주가 유일하였다. 예로부터 하늘의 해, 달, 별은 왕을 상징하여 지명으로 사용되는 것이 금기되었다. 성주 선석산 아래 봉곳하게 솟은 봉우리 하나. 지관의 눈에도 천하의 명당이었다. 선석산이 뒤를 받치고, 앞에는 극지(極池)라는 연못이 있어 음양의 조화가 극을 이룬 명당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세종대왕의 18적서 왕자와 단종의 태를 봉안했다. 그리하여 이 봉우리는 태봉(胎峰)이라 불리게 되었다. 태(胎)는 생명줄이 아니던가. 태가 있어 생명이 유지되고 탄생되니, 태는 곧 생(生)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호(號)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장산서예원 서실에 80여분의 장산서도회 회원들이 참석하였다. 1년에 한번 있는 가장 큰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정성껏 준비한 다과와 주고받는 덕담, 그리고 오고 가는 술잔. 회원들의 얼굴이 취기에 불그레해질 무렵 스승님이 오늘 호 수여자들을 면접한다. 호 수여자는 3명이다.
스승님이 일필휘지로 적은 휘호 한 점을 높이 들고, 회원들에게 말씀하신다. "여기 이현학씨는 고향이 성주라서 별 성(星) 자를 따고, 물을 좋아 하고, 낚시를 즐기므로 호수 호(湖)자를 더해 호를 성호(星湖)라 하겠습니다. 직역하면 '별빛 내리는 호수'입니다. 해불양수(海不讓水) 휘호는 '바다와 같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며 살아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앞으로 성호로 호칭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나는 십 년 전 새로운 이름 '성호'로 불리게 되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 전원 주택지를 개발하게 되었다. 앞은 연못이 있었고, 사방이 아늑한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2400여 평의 부지에 도로를 내고 수도를 연결하고 토목을 하였다. 주택지 8필지를 분양하고, 전원주택 2채를 건축하였다. 조그마한 전원마을을 만든 셈이다.
전원주택지 조성공사를 하고 있는데 마을의 한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여보게. 여기 연못의 유래를 아는가? 여기 연못을 극지라 한다네. 이곳은 예전에 아주 큰 연못이 있었다네. 어느 날 이무기가 승천하면서 꼬리로 못 둑을 쳐서 못물이 다 빠져 나가고 남은 곳이 이곳이라네. 이 마을 이름이 '모산'아닌가. 못 안에 생긴 마을이라서 못안이라 했는데 모산으로 바뀌었다네. 극이 무엇인가. 만물의 근원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 극지가 없었다면 태봉도 없었을 것이네. 만물의 근원이 되는 극지 옆에 이리 전원주택지가 만들어져 사람들이 들어오니 얼마나 좋은가"라며 흐뭇해 하셨다.
사람들은 흔히들 음양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해와 달, 낮과 밤, 남과 여. 이 모두가 음양을 칭한다. 태봉이 명당이 되기 위해서 극지가 있어야 했듯이 우리 사람사는 세상도 조화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남북, 빈부, 이념, 세대, 지역으로 갈가리 나누어져 반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호 인정하고 포용하는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나 스스로 산(山)을 산(算)으로 여기고, 물(水)를 물(物)로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은가 반문해본다. 십년 전 서예 스승님께서 주신 해불양수의 의미를 다시금 가슴에 새겨본다. 산(算)을 벗어나고, 물(物)를 벗어나, 산(山)처럼 물(水)처럼 살고 싶다.(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