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햇수로 삼 년 만에 은희경이 새 소설을 선보인다. 95년 등단 이후 일 년에 한 권꼴로 새 책을 선보여왔던 작가라는 점에서 꽤 오랜만의 작품이라 할 만하고, 그만큼 이 소설에 시간과 공력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시간의 무게 탓일까, 이 작품은 기존의 은희경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이전 작품들이 경쾌함과 발랄함으로 다가왔다면, 이 소설은 산고의 무게 이상으로 무겁고 깊게 다가온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공들인 문장과, 그 문장들 사이의 긴장, 그리고 행간의 밀도 역시 깊고 치열해졌다. '할 말은 어지간히 한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은희경 소설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한다. 등단 이후 10년, 내내 삭이고 벼려온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전해지는 이번 신작은, '타인'이 아닌 그녀 자신에게 '말걸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냉소를 거두고 자기 삶을 직접 마주 대하며 쓴 글인 만큼 작가의 아픈 성장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저 : 은희경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름에 유난히 가물고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는, 농사에 결코 이로울 리 없는 기후 특징 외에 아무런 특산물도 절경도 없는 K읍을 지나치며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척박하고 군색한 고장이라는 인상을 받게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목 밑까지 치밀어오르는 멀미를 참기 위해 잔등이 벗겨진 붉은 산벼랑을 노려보면서 악명 높은 곰치재를 넘어 겨우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여행자라면 자신을 맞이하는 읍내의 초라한 행색에 심란하고 허탈한 심사가 되는 걸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여인숙과 약국과 잡화점의 간판들은 어디선가 곧 바람이라도 불어닥칠 것처럼 을씨년스러워보였으며 그 너머로는 좁은 골목들 사이로 녹슨 함석지붕과 양철대문들이 웅숭그리고 있었다. K읍에서는 눈길을 멀리 두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망연히 고개를 쳐들었다가는 당장 처마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낮은 산들에 시야가 가로막히곤 했으므로 그때에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고 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산들은 마치 늙고 피곤한 장돌뱅이들이 봇짐에 기댄 채 아무렇게나 끼어앉아 쉬고 있는 봉놋방 봉창에 비친 그림자 같았다. 여행자들은 K읍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했다. --- 본문 중에서 • 미디어 리뷰 "고향, 멈추는 순간 사라지는 곳" | 국민일보 정철훈 전문기자 | 2005-01-28 | 등단 10년을 맞은 소설가 은희경(46)씨가 장편 ‘비밀과 거짓말’(문학동네)을 펴냈다. 등단 이후 1년에 한 권꼴로 신작 소설을 선보여왔던 데 비해 이번 소설은 꼬박 2년이라는 시간과 공력을 쏟아부었다. 2003년 여름부터 2004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하는데 1년,재탈고하는데 또 1년. 시간의 무게 탓일까. 이전 작품들이 경쾌함과 발랄함으로 다가왔다면,이 소설은 산고를 짐작케 할 만큼 무겁고 깊다. “그날 오후 두시 십분, 공무원 가족을 위한 요양시설에서 정정욱이 육십구 세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으며 상처한 지 이년 만이었다. 그는 K읍에 첫 아스팔트 포장을 했고 경찰서와 우체국과 학교 강당을 지었으며 K대교 등의 교량과 저수지를 건설하고 K군 도로를 확장했던 경제개발계획 시절의 산업 역군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작가의 고향인 고창을 연상케 하는 K읍. 외형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인 영준의 성장기와 영준·영우 형제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다. 그러나 좀 더 확장하면 두 형제와 아버지 정정욱의 이야기이며,다시 넓어져 아버지 정정욱과 할아버지 정성일,또다시 정씨 집안과 최씨 집안의 이야기이고,다시 K읍의 이야기이고,결국은 작가 은희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아버지 정정욱의 죽음과 그가 남긴 유산인 집문서와 가문에서 내려오는 북으로부터 열린다. “오래 전 K읍의 채권자들에게 팔렸던 아버지의 집 중 일부가 한 여자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뜻밖의 일이었지만 지금껏 아버지가 손수 그 여자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제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그 집을 팔아 돈을 여자에게 보내주라는 것이었다. 영우는 아버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명선은 누구인가. 할아버지 정성일은 장남이 낚싯배 사고로 사망하자 며느리에게 상복을 입지 못하게 하고 바로 개가시킨 뒤 맏손녀인 명선을 벙어리 식모의 손에 맡겨 키웠다. 그러나 명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식모 취급을 받으며 고생하다가 열여덟 나이에 저수지에 몸을 던져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집을 팔아 명선에게 유산을 물려주라니! 죽은 사람 앞으로 재산을 남겼을 리는 없을 터. 영준과 영우 형제는 명선이라는 동명이인의 존재를 어림한다. 또다른 명선은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이복 남매. 명선의 친모는 정씨 가문과 원수처럼 지내던 최씨 집안의 딸이다. 정정욱이 집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바깥 소생인 명선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 소설이 화해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큰아버지 소유였다가 다시 아버지 소유가 된 북도 그런 의미에서 화해의 큰 틀거리를 보완하는 소설적 제재인 셈이다. 소설에는 이처럼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있고,사랑과 운명의 이야기가 있고,공간과 시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지난 세기를 개발붐으로 통과한 K읍 자체다. “K읍의 소년이 먼지 속에서 여행자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면 사춘기가 시작된 것이었다”와 같이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회고된 문장을 뒤로 하고 K읍은 서서히 굳게 입을 다물며 죽어간다. “3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고향의 현재적 의미,아버지가 살았던 시공간에 대해 써볼 작정을 했지요. 글을 쓰는 동안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결국 그것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인’에게 말을 걸었던 은희경은 이번 소설에서 자신에게 말을 건다.‘스스로 성장을 멈추었다’는 열두 살 애어른 진희를 내세웠던 ‘새의 선물’과 ‘58년 개띠’ 남자들을 내세운 ‘마이너리그’에 이어 이 작품도 역시 한 편의 성장소설로 읽힌다. 그러나 예의 두 작품이 작가 스스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삶과 성장에 대해 진술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직접 삶을 마주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이란 늘 소설가의 현재를 반영하지요. 이야기 속에서 과거를 끌어냈든, 미래를 상상해놓았든 거기에서 삶을 읽어내는 것은 현재의 눈이죠. 새로운 이야기로 들어가는 경계에 섰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작별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만들어진 진실' 이 더 진실할수도… | 세계일보 송민섭기자 | 2005-01-29 | 1990년대 대표적 여성작가로, 삶에 대한 ‘삐딱하고 가차없는, 그러나 위트 있는 시선’을 보여줬던 은희경(45·사진)이 다섯 번째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문학동네)을 펴냈다. 열두 살 애어른 진희를 내세운 ‘새의 선물’이나 58년 개띠 남자들의 성장기인 ‘마이너리그’처럼, 영준과 영우 형제를 앞세운 성장소설이지만 이전 작품들보다 스케일이 커졌고 바라보는 시선과 그려낸 삶의 무늬가 훨씬 다층적이다. 미국 시애틀에서 체류하면서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작품을 다시 1년간 다듬었다. “90년대 나의 세대는 아버지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된 정체 찾기의 여정에 나섰다. 나 역시 ‘나는 나다’라는 선언의 흥분과 두려움을 동력으로 해서 고여 있던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오려 했다. 그러나 요즘 내 눈앞에는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지점이 자주 어른거린다.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결국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쓰는 동안 깨달았다.” 소설의 무대는 작가의 고향인 전북 고창을 떠올리게 하는 지방 소도시 K읍이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연스럽게, 그곳을 벗어난 큰 아들 영준은 영화감독이고 그의 동생 영우는 하급공무원이다. 그들에게 닥친 아버지 정정욱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다. 그저 어리둥절한 체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이들 형제의 성장기와 K읍의 유력가문 정성일·정욱의 가족사와 정씨 가문과 대대로 원수집안이었던 최씨 집안의 이야기를 들춰내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는 이미 팔려버린 것으로 알려진 정명선 명의의 집문서를 팔아 돈을 실제 소유주인 ‘정명선’에게 건네주라고 말했다. 형제가 알고 있는 정명선은 사촌누이로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는 할아버지 정성일의 장남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 장남은 국가고시를 포기한 뒤 하릴없이 보내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장남이 죽자 할아버지는 며느리를 즉시 개가시키고 맏손녀 명선을 벙어리 식모에게 맡겨 키웠다. 할아버지가 죽자 홀대받던 명선도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그랬던 누이가 살아 있을 리는 만무하고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라면 그는 누구이며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일까. 작가는 정명선 명의로 된 집문서에서 비롯된 겹층의 부도덕, 추문, 외설, 근친상간적 충동의 ‘서사’를 드러냄으로써 ‘개인의 내면으로 향한 사소설적 경향’이라는 90년대 소설과의 차별을 선언한다. 또한 작가는 스스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삶과 성장에 대해 진술했던 지난 작품에 비해 이번 소설은 등단 이후 10년 동안 그를 ‘내내 누르고 삭이고 별러왔던 삶과 죽음의 이야기, 세상과 삶의 무게와 진실, 비밀’에 대한 나름의 고백을 담았다고 말한다. ‘객관적 진실보다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 수 있는’ 삶의 비밀과 거짓말에서 시작해 영준과 영우 형제간·부자간의 갈등과 화해, 이를 잉태한 한 집안의 기구한 내력과 운명, 그 집안을 더욱 그렇게 만든 대척점과, 이 모든 것을 품어 안은 고향과 죽음을 장대하게 그린 이 소설에 대해 평론가 류보선은 “작가가 (이전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을 억압하는 초자아의 작동 시스템과 기존 역사상에 의해 배제됐던 억압된 요소를 다시 소설 속에 불러들이는 변신의 출발점이자 신호탄”이라고 설명한다. 한 겹 벗은 성장소설 '은희경스러움'을 넘어 | 한국일보 책과세상 최윤필기자 | 2005-01-29 | 은희경씨가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을 냈다. 2년 반 동안 매달려 쓰고 퇴고했다는 작품이다. 1995년 등단 이래 4권의 장편을 포함해 7권의 책을 낸 그간의 쾌조의 글쓰기 행보에 견줘 이 여덟번째 책에 들인 공력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것을 작가는 ‘한 고비를 넘기 위한 수고’라고 말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중층적이다. 시골 소도시의 영준 영우 형제가 아버지의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인 훈육 속에서 성장하며 겪는, 정체성의 혼돈 등 다단한 생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룬다. 거기에 이들 형제가 속한 집안과 이웃 집안이 마을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의 대물림이 얹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이 여러 감춰진 비밀 혹은 거짓말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섞여 든다. 집안 3대의 이야기가 갈마들고, 영화감독이 된 영준의 영화 시놉시스까지 중간중간 삽입된다. 이 복잡한 이야기 갈래를 작가는 특유의 ‘냉소적 이성의 문체’와 경쾌한 리듬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가지런하게 땋아가고 있다. 주무대인 시골 소도시는 단어의 뉘앙스처럼 폐쇄적이고 정체된 공간이다. 거기에 70년대라는, 우리사회가 경험한 가장 파행적이고 폭력적인 역동성의 시간이 밀어닥친다. 아버지는 관급공사 수주와 권력의 외줄타기에 삶을 건 자수성가한 건설업자. 그에게는 집안을 일으켜 세워 ‘가문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소명이 주어져 있다. 그 소명의 대리자인 영준 형제는 그 간단치 않은 시대와 세대와 가계의 중력장에 놓인 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대끼고 적응하며 성장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결코 낯설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나 은희경씨의 문장으로 만나는 시간의 역사는 개별적인 경험의 기억들을 압도할 만큼 새롭고 진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따라서, 두 형제나 그들의 가계가 아니라 그들이 지나쳐 온 장구한 시간이며, 그 시간은 지금 우리의 시간에 닿아있고 녹아있는 삶의 시간이다. 이 소설이 성장소설의 범주를 넘어, 더 넓은 세계를 지향하는 듯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은희경씨는 “그동안 할말은 어지간히 한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로 들어가는 경계에 섰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작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적었다. 아버지 죽음으로 드러난 또 다른 가족사 | 조선일보 최홍렬 기자 | 2006-01-29 | 3년 만에 새로 만난 은희경은 사뭇 다르다. 그간 경쾌함과 발랄함으로 생에 대한 직관을 보여줬던 그가 이번에는 무겁고 진지해졌다. 그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게 은희경 소설 맞아?”라는 느낌을 줄 정도다. 2002년 여름부터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에서 2년간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문예지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을 다시 1년 이상을 매달려 책으로 펴냈다.“‘새의 선물’을 쓸 때 12살 딸아이에게 원고를 보여주며 ‘이것 말 되니? 네가 재미있으면 된 거다’ 했어요. 그 아이가 올해 대학에 갑니다. 제 소설도 이제 몸짓이 커졌고 큰 옷으로 갈아입어야죠.” ‘새의 선물’이 열두 살 난 여자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면, 이번 소설은 어른의 시각으로 가족사를 돌아보며 자신의 성장기와 정체성을 반추하는 성장소설 형태를 취했다. 소설은 산골마을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배경으로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는 형과 이탈하려는 동생 간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이자, 원수 사이였던 옆 집안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크게 3가지 이야기가 중첩되어 조밀하게 엮여 있다.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루된 집안의 비밀이 한 축이라면, 형제이면서 사사건건 뒤틀리기만 하는 형과 아우의 갈등과 화해가 또 다른 이야기다. 여기에 영화감독이 된 주인공이 영화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도시인의 삶이 펼쳐진다. 아버지가 소설의 중심에 있는 것도 그의 소설에선 드문 일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가 남긴 유물로부터 인물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버지가 남긴 집문서는 집안 전체에 흐르는 또하나의 역사를 드러낸다. 겉으로는 가장 도덕적이고 인근에 명성이 자자했던 집안에는 쉬쉬하며 잊혀져 간,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과 외설의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부도덕과 불길한 욕망, 근친상간적 충동, 비극적 운명 등이다. 원수지간이었던 최씨 집안의 딸에서 낳은 딸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극적 반전을 시도한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고향의 집을 그녀에게 넘기라고 유지를 남기고, 자신의 도덕성에 치명적일 수 있는 증거를 아들에게 공개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비밀이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 아버지는 재발견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모두가 진실일까. 어쩌면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면 그럴 만한 필요가 있는 것…’ “90년대에 나의 세대는 ‘아버지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된 정체 찾기의 여정에 나섰죠. 그들에 대한 기억을 보수하거나 철거할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처음 버려진 그대로 울타리 안에서 한참을 헤맨 듯한 느낌입니다. 이번 소설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작중 모델로 삼았어요.” 작가는 “그동안 ‘나’ 자신을 숨기고 돌려 말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이번 작품에는 내 육성이 그대로 반영된 부분이 많다”며 “사십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비로소 유치한 장식이 잔뜩 달린 채로 빛이 바랜, 청춘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놓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데…?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손민호 기자 | 2005-02-05 |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기억하는가. 10년 전 신예 작가 은희경이 당돌하게, 때론 냉소적으로 던졌던 문제들을. 그 '질문'의 이름은 '새의 선물'이었다. 작가의 고향인 전북 고창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이후 10년간 무려 61쇄를 찍어내며 이 시대 최고의 화제작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재기발랄했던 신예 작가는 이제 마흔을 훌쩍 넘긴 문단의 중견이 돼버렸다. 그런 그가 다시 고향을 이야기한다. 이번 이야기의 이름은 '비밀과 거짓말'. 지금도 당돌하고, 냉소적일까? 도발에 가까웠던 문제 제기는 여전할까? 작가는 "변화라기 보단 확장"이라고 말한다. "단지 나이가 들어 어릴 적의 옷을 입지 못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처음 몇 쪽을 넘기다 보면, 낯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미디어 리뷰 전체보기 • 출판사 리뷰 햇수로 삼 년 만에 은희경이 새 소설을 선보인다. 자신의 여덟번째 책이자 다섯번째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 95년 등단 이후 일 년에 한 권꼴로 새 책을 선보여왔던 작가라는 점에서 꽤 오랜만의 작품이라 할 만하고, 그만큼 이 소설에 시간과 공력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이 작품을 자기 소설세계의 전환점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새의 선물』 이후 십 년, 삶과 죽음의 모든 중량을 담은 은희경 소설의 새로운 풍경 이 소설 『비밀과 거짓말』은 2003년 여름부터 2004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던.. 출판사 리뷰 전체보기 • 독자 리뷰 은희경이 돌아왔다 정군 님 | 2005-01-31 | 책내용 책상태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여 작가로 발돋움한 은희경이 돌아왔다. 이후 약 4년, 소설집 이후로는 2년여 만이다. 그 동안의 작가가 보여준 행보를 떠올려보면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다. 긴 시간 동안 작가는 어떤 작품을 준비했던 것일까? 신작 은 그래서 더욱 궁금한 작품이다.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가 등단한지 10년이 흐른 때에 등장한 작품이기에 관심은 더욱 깊어진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시간을 앞둔 이때에, 긴 공백기 끝에 작품을 발표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숨겨진 건 아닐까? 은 기존의 작가 작품들에 비하면 낯설다. 강산이 변했다는 비유조차 어색하게 느껴진다. 은희경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도발’과 ‘냉소’의 흔적은 작품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렸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작가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봤던 사람이라면 을 통해 작가가 분명히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껏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화자들에게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 등장시켰던 아버지의 존재가 이번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죽음 후 큰아들인 영준은 동생 영우를 통해 뜻밖의 뒤처리를 맡게 되는데 그것은 한 여인에게 K읍의 집을 돌려주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영화를 제작하느라고 정신없는 영준은 일의 처리를 두고 미적 미적거린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 했던 모범생, 훗날 스스로 아버지의 자리를 머릿속에서 영원한 부재로 남겨두려 했던 장남은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그 태도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운명은 영준을 가만두지 않는다. K읍의 집을 처리해야한다는 뒤처리가 맡겨진 이후부터 잊어버렸다고 믿었던 과거로부터 끊임없는 연락이 온다. 자신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연락 속에서 영준은 자신이 살아왔던 길을 돌아보고 또한 알 수 없는 진실이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동생 영우도 마찬가지다. 모범생인 형과 달리 갖가지 말썽을 피우며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인생의 멋진 날을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영우도 모르고 있던 거짓말 같은 진실, 진실이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거짓말이었던 것들이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하여 형제지만 너무나 다른 두 명의 자식이 절대자 같은 이가 장난처럼 설치해놓은 외딴 곳에서 한 곳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은 만큼이나 개성적인 형제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버지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오해를 하며 평생을 살아 온 두 명의 아들이 갈등을 하고 화해하게 되는 과정은 한국 문학에서 낯선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그것에 접근했다는 것이 사뭇 신비스럽게까지 보이는데 그 결과는 역시 은희경이라는 감탄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하다. 의 중심인물들은 세상과 갈등하는 인물들이다.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맞춰 살다가 결국은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린 영준이나 남이 정해놓은 인생 틀에 맞춰 연극을 하듯 인생을 살아가는 영우는 서로 다르지만 아버지와 세상, 나아가 자신과도 갈등하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갈등과 함께 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견원지간 같은 정씨네와 최씨네의 갈등이다. 그들의 갈등에서 태어난 온갖 거짓말과 숨겨진 진실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작품의 첫머리에서도 쉽게 알 수 있고 작가는 작품 내내 그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집안의 갈등에서 터져 나왔던 비밀과 거짓말의 봉인이 풀릴 때, 영준과 영우가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터뜨릴 때 마침내 의 대서사시는 막을 내린다.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면 그럴 듯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주는 묘한 여운과 함께 작품은 불완전하게 끝을 맺는다. 이제까지 세상을 향해, 혹은 타인을 향해 말을 걸었던 작가의 펜이 이제는 자신에게 향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까지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아찔한 기분까지 주는 변화의 모습, 그 모습이 등단한지 10년째 되는 해에 내놓은 신작 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작가의 어느 작품에 못지않다.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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