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시인)
착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날개옷을 내놓자 기가 막혔지요, 우리가 정녕 부부였다니? 내 남편이 선녀들의 벗은 몸을 훔쳐본 치한이었다니? 끓어오르는 경멸감과 배신감에, 날개옷을 떨쳐입고 두 아이를 안고 날개 쳐 올랐지요, 털끝만치도 미안하기는커녕 억울하고 분할 뿐이었지요
오오 그리운 내 고향! 가슴도 머리도 쿵쾅거렸지요, 큰애가 아빤 왜 아니 오느냐고 하자, 비로소 정신이 났지요, 애들이 아빠를 그리워한다면? 천륜(天倫)을 갈라놓을 권리가 내게 있는가? 아쉬우면 취하고 소용없어지면 버려도 되는 게 남편인가? 우리 셋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옥황상제님도 잘했다고 하실까? 글썽이는 아이들의 눈을 보자, 탱천했던 분노도 맥이 빠지고......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날개옷을 바라보니, 뜻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분명 나는 웃고 있었지요, 내 하늘은 이 오두막이야, 우리집이야, 마당 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 밀려왔지요.
------------------------------------------------------------------------------
‘나무꾼과 선녀’로 기억되는 어린 날의 이야기가 이 시에서 고스란히 ‘선녀와 나무꾼’으로 되살아났다. 그 옛날 선녀는 어쩔 수 없이 ‘하늘의 사람’으로 운명지워진 ‘천상(天上)의 선녀’였지만, 이 시에서 선녀는 사람의 따뜻한 피를 가진 ‘어머니’로, ‘아내’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선녀와 아이들을 찾으러 밧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어떻게 되었을까, 퍽이나 궁금했었다. 그리고 텅 비어 버렸을 초가 오두막이랑, 그가 일구던 논밭들이랑 농기구들이랑, 누렁소나 강아지들은 어떻게 됐을까 퍽 안타깝고 궁금했었다. 그런데 선녀가 피를 나눈 사랑과 가족의 참 의미를 깨달으면서, 눈물로 날개옷을 태우는 대목에서 어릴 적 의문이 풀리고 세상은 한결 따스해졌다. 그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 보따리가 아니겠는가.
배창환(시인․ 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