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1호에서 이어짐) 차츰 환자들이 늘어나서 1997년부터는 의사를 채용하게 되었다. 캄팔라에 있는 높은 직위에 있는 변호사가 수녀의 내방 진료를 요청해 왔다. 바빠서 내방을 갈 수 없으니 환자가 오라며 거절을 했더니 외래진료를 왔다. 증상이 좋아진 뒤 많은 변호사들을 소개해줬다. 병원이 아니라 외래진료와 산과를 두어 분만을 돕는 출산 여건이 열악한 건강센터이다. 만약 산모가 분만을 하다가 사망하게 되면 법적문제로 복잡해지는데 아직까지 건강센터에서 산모사망은 없었다.
에이즈 환자들은 별도의 문으로 출입을 하며 상담과 치료를 시키는데 베네딕다 수녀가 에이즈 환자에게 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하니 믿고 아끼는 간호사가 극구 말리며 본인이 주사를 준다. 미국에서 에이즈약을 개발하여 이제는 치료만 잘 받고 본인이 주의만 하면 완치될 수 있는 병이라며 미국에 고마워하고 있다.
베네딕다 수녀의 건강센터 운영 원칙은 환자가 돈이 없더라도 치료부터 해준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니까 사람을 우선 살리고 본다는 것이다. 중환자로 여러 곳을 다니다가 수녀의 건강센터를 마지막으로 와서 진료를 받고 사망을 하면 살아서 해볼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보았다면서 만족해하며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운명을 한다.
이런 수녀의 애민정신이 살아있기에 인근 진료소보다 환자가 매일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400명 정도 찾아와 아침부터 외래환자들로 만원이라 대기실을 널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건강센터에는 접수실, 진료실, 검사실, 치과(진료 20년째), 에이즈센터(15년째), 산과(10년째), 방사선과, 산모의 정기 검진을 위한 산과, 약국, 주사실, 직원 회의실 겸 식당 등이 있다. 산모의 출산을 위한 입원실도 있다.
스위스와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받는 에이즈약과 말라리아약은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준다. 처방하는 약 중에 유통기한이 넘은 것을 사용하는 것은 없는지 불시에 경찰이 감사를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곳에는 걸리는 일이 없다. 이런 여러 가지를 지켜보는 진자 시에서도 진료소에 필요한 기기, 약, 면역예방약, 재정지원까지 해준다. 센터에 필요로 하는 태양광도 외국 재료로 정부에서 설치해 주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늘 모든 사람들을 신중히 대한다. 특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의 몸은 다치면 치료하면 나아지지만 마음의 상처는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래처와 사람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직원과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 수녀들과의 사이에서도 늘 신경을 쓴다. 자신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으며 마치 푹 썩은 한 알의 밀알처럼. 남 수단의 이태석 신부의 삶과 같이….
베네딕다 수녀는 가까운 지역의 부족 간 분쟁이 일어나 위험한 상황인데도 들어가 중재역할을 한다.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 그들에 의해 죽어도 괜찮다면서, 자칫하면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데도 베네딕다 수녀가 중재를 하면 잘 마무리가 된다.
이런 수녀의 오랫동안 철저한 봉사정신과 사랑이 외래환자와 이웃들에게 묵묵히 전해지고 정부에까지 전해졌다. 처음 도착하여 빌린 땅을 25년간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가 사용 기간이 끝나면 정부에 돌려주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수녀들은 매일 25년이 되어 건강센터와 초등학교, 잘 지어진 수녀원을 두고 떠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했다.
2014년 7월 17일 정부로부터 빌린 땅 모두를 수녀원 명의로 무상으로 기증 받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수녀들은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얼싸 않고 너무 기뻐했다. 그날 나도 그 자리에 함께하며 기뻐했다. 기증 받은 면적이 25만㎡로 75.625평이다. 한개마을은 문화재 지정구역이 201,727㎡로 61,022평으로 한개마을 보다 규모가 크다. 18개국 23개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 본원과 분원 중에서 제일 넓은 면적을 소유한 수녀원이 되었다. 이 넓은 땅을 무상으로 수녀원에 정부에서 기증했다는 것은 단체에 대한 정부의 신뢰가 높다는 것이다. 처음 선교 시작할 때 정부와의 약속인 주민들의 건강과 화합, 교육 등 기여한 것을 인정해서라고 한다. 대통령께서 크게 쏜 것이다.
해외 선교 나가있는 선교사들은 본국 휴가 오면 후원금을 얻어 가기 위해 선교지의 열악한 상황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여 베네딕다 수녀는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외적인 성장보다는 내적인 선교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 수녀는 외부적인 확장과 발전보다는 현지인들과 같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서서히 발전하는 삶을 선택했다. 오지에서 현지인과 같이 고생하며 서서히 일구어 나온 건강센터와 학교, 농장, 수녀공동체이기에 서로의 끈끈한 정을 느끼는 것 같다. 여 수녀는 큰소리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원들이 수녀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한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면 늘 그 일을 할 수 있는 재정이 그때 필요로 한 만큼 후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런 선교를 원칙으로 삼고 묵묵히 긴 세월을 지냈기에 오늘의 공동체가 이루어졌다고 보며 `선교사의 모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