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기에
문방사우를 만났다
벼루에 먹을 갈아
백지 위에 점과 선을 이어갔다
운필이라 했던가
붓을 어떻게 운전할 것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한 돌이 지나면
일어서기도 하고
디딤걸음을 하듯
붓길도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붓 끝에 먹을 먹이고
바람을 일으켜
바닥 짚고 허리 펴고
중봉으로 몸을 뒤로 제쳤다가
역입으로 일어나 걷는다
인생여정처럼
하나 두울 셋이라는 리듬에 맞춰
붓으로 자국 남기며 행필한다
붓이 가는 길
오르막 내리막길도 있다
굴절과 꺾임
직선과 곡선의 만남도 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붓꽃도 피고
붓님을 기다리는 옥판선지
일방통행이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도
되돌아 올 수도 없다
그러기에
붓끝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나를 겸허히 여겨
가을들판 잘 익은 벼처럼
나를 세우지 아니하고
장봉하여 늘 고개를 숙인다
그러다가 회봉때는
붓필에 압을 넣어 끝을 세운다
붓끝을 세우니 그 안에
한유 선생 시성 두보도 만났다
書山有路 勤爲徑(서산유로 권위경)
學海無涯 苦作舟(학해무애 고작주)라
책이나 산에는 길이 있으니
부지런함이 지름길이요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니
고난의 배를 타도다
부지런하지 못하면
산길을 갈 수 없고
역경이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는 운을 때운다
그러자 두보도
筆落驚風雨(필락경풍우)하니
詩成泣鬼神(시성읍귀신)이라고
글씨를 떨어뜨리니
비 바람이 놀라고
시를 지어 이루니
귀신이 우는구나
한 더위 진흙 위 까마귀 자국을 보면서
물질문명 이기시대를 탓하는
성구도 만났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
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적폐라는
위대한 핑퐁게임이
가슴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