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계를 이끌며 평생 민족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심산 김창숙 선생 서거 제43주기 참배 행사가 지난 10일 심산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이창우 군수, 조상용 군의장, 김기대 도의원, 조용택 교육장, 김영두 경찰서장, 권오한 소방서장, 권중동 농협군지부장을 비롯한 지역기관단체장과 유도회·담수회·박약회 회원은 물론 군청 실과소장들이 참석해 참배를 했다.
참배에 이어 여성유도회(회장 류정숙)에서 준비한 다과와 전통차를 나눠 마시며, 심산 선생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받들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이창우 군수는 『선생은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출신으로 일생을 꼿꼿한 절개와 선비정신으로 지켜온 성주가 낳은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라며 『추모 행사를 통해 선생의 뜻을 받들어 선비와 양반의 고을로 유명한 성주의 명성을 계속적으로 가꾸고 계승하자』고 밝혔다.
한편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선생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으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남 및 충청도의 유림 1백37명이 서명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 진정서를 유대하고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우송했다.
선생은 그 해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약했으며, 쑨원과 교섭해 독립운동 기금을 원조받는 등 광복운동을 위해 분투하다가 27년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원에게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광복 후 전국 유림을 결속해 유림재단을 정리한 후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는 한편,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육영사업을 목적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을 재건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이에 따라 국가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친 심산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종친회와 경향 각지의 뜻 있는 분들의 성금과 국·도·군비의 지원을 받아 1974년 8월 15일 성주군청 뒤편에 심산기념관을 건립했다.
심산기념관 내에는 심산영정과 심산유고·심산사적비·기타 보도사진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건립 이후 심산 정신계승과 문화행사 등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1997년 3월 성주군으로 기부 이관되어 성주유도회 사무실과 각종 문예 행사장으로 대관되고 있으며, 현재 성주군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다.
/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