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다듬어 봐요.
교복을 다시 단정히 하고
머리도 예쁘게 다시 빗지요.
1등급을 위해 달려야 하는
세상에 지치고
매일 밤 10시까지 강행되는
야자에 지치고
친구와의 사소한 트러블에
잘 때 몰래 눈물짓던
내 얼굴은 싹 지워버려요.
'집에서 떨어져 나와 살아도
저 잘 지내고 있어요.
정말이예요.'
절 데리러 나오신 아빠는
그저 웃고 계세요.
일 주일 전보다
흰 머리가
더 많아지신 것 같은데......
아빠는 거울도 안 보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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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들어오는 물체를 반영하므로 꼭같은 사물을 그 앞에 세워 놓는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자아(自我)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 분열된 자아를 가진 사람은 분열된 자아의 모습을, 건강한 내면을 가진 사람은 건강한 자아의 모습을 거울 앞에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話者)는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학생이다. '1등급을 위해 달려야 하는/세상에 지치고/매일 밤 10시까지 강행되는/야자에 지'쳐서 쉬는 시간이면 그대로 책상 위에 쓰러져 지친 얼굴을 묻어야 하는 요즘의 고등학교 학생이다. 그런데도 이 시의 거울에 비친 화자는 건강하다. 건강하지 못한 것은 발랄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시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세상'이고 교육제도이며, 그런 제도에 대해 묵인하고 순응하는 학교와 학부모들이다. 기숙사에서 일 주일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토요일 오후에, 이 시의 화자는 고통스런 자신의 흔적을 거울 앞에서 '지우'려고 '교복을 다시 단정히 하고/ 머리도 예쁘게 다시 빗'는다. 아이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아버지는 '그저 웃고' 있다. 그런데 화자(話者)인 아이는 오히려 '일 주일 전보다/ 흰 머리가 많아지신' 아버지를 걱정한다.
강요된 고통,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이겨내는 아이와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묻어나고 있다.
- 배창환 (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