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트 팍스라는 사람이 사랑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했다. "충분한 사랑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란 없다./ 충분한 사랑이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열 수 없는 문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건널 수 없는 해협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무너뜨릴 수 없는 벽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뉘우치게 할 수 없는 죄도 없다./ 근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날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이는지도/ 매듭이 얼마나 단단한지도/ 저지를 실수가 얼마나 거대한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충분한 사랑은 이것 모두를 녹여버릴 것이다./ 충분한 사랑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삶이 주는 고통이 조여오는 환경에서 이것을 이겨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이 질곡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서로 사랑하라." 여기에 그 길이 있다. 여기 `서로`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우선시한 말이다. 그것은 내 아내요, 내 남편이요, 내 자식이요, 내 가족이요, 생활공동체이다. 살기가 어렵고 고생스러울 때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첫째는 서로 위로하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경쟁적이고 폭력적이다. 여기 필요한 것이 위로이다. 위로는 사람을 살리는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는 그것이 바로 `살림살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살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로하는 일이다.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요 학자인 헨리 하우엔은 말한다. "위로라고 하는 것은 외로운 사람과 함께함을 의미한다. 위로하는 것은 마음을 쓰며 돌보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다. 위로한다는 것은 고통을 제거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위로는 함께 있으면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아요? 우리는 함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모두 이와 같은 위로가 필요한 때에 살고 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볼 때 우리 가족 사이에 서로 위로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다른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지만, 가정에서 일이 꼬이고 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것이 앞서기 쉽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서로가 끌어안고 위로하며 서로의 체온을 주고 받아야 할 때이다. 둘째는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는 공동체 생활의 접착제이다.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흩어지지 않도록 꽉 묶어주는 것이 용서이다. 용서하면 공동체가 흩어지지 않는다. 가정이 흩어지지 않는다. 부부가 나누어지지 않는다. 자녀들이 튀어 나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완전한 사랑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용서해주어야 할 빚을 지고 있다. 특별히 가까이 사는 가족들에게 용서해 주어야 할 빚을 지고 있다. 용서는 자기를 해방시키는 행위이다. 용서를 하면 누구한테서 상처를 받았다는 정신적 부담에서 자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상처를 준 그 사람을 마음속에 데리고 다니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용서하면 그 부담에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요, 그래서 용서하면 먼저 내가 살고, 내 가까이 있는 가족이 살고, 내 이웃도 살게 된다. 이것이 사랑이다. 셋째는 인내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냐를 말하면서 인내를 여러 번 강조 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다. 우리 말에도 "근면한 자에게는 어려움이 없고 오래 참는 가정에 평화가 있다(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란 교훈이 있다. 인내는 모든 문을 여는 열쇠이다. 인내는 평화의 유지자요 사랑의 육성자요 겸손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위로하라.` `용서하라.` `인내하라.` 이것이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랑의 길이다. 이 사랑은 한 평생 계속되는 사랑이어야 한다. 가족 사이의 사랑은 끝까지 가는 사랑이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어야 한다. 풍성하게 주는 사랑, 그저 흠뻑 주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받고 있다고 하는 감정보다 더 마력적인 것은 없다.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은 마치 어깨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것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크고 부드럽고 따뜻한 하나님의 손길이 내 어깨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여러분의 가정에서 누가 하나님의 이 큰 손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내는 힘이 빠진 남편의 어깨에 얹는 하나님의 손이 되고, 남편은 불안해 하는 아내의 어깨 위에 얹는 크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큰 손이 되어 그 사랑의 힘으로 어떠한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19.3.20.)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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