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다면 늙기 마련이다. 흔히 늙음을 `죽음`의 전 단계로 인식해서인지 부정적인 의미를 씌우곤 한다.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생명체가 가지는 속성이자 운명의 최종 단계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새로이 태어나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죽음이란 우리가 생명체라는 증거이며 반드시 거쳐야 할 결말이다. 그렇다면 `늙음`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죽음과의 연결 고리로 인해 그늘이 드리워진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세상을 떠남에 대해 다른 개념의 이해가 필요하듯 노년에 대해서도 보다 자연스러운 시각이 필요하다. `老`라는 글자는 `익숙하다`, `노련하다`, `덕이 높다`라는 뜻을 함께 내포한다. 그래서 경험을 많이 쌓고 세상사에 통달한 사람을 `노수(老手)`라고 일컫는다. 노작가(老作家), 노교수(老敎授), 노병(老兵) 모두 그렇게 생겨난 말들이다. 고량주 가운데서도 최고급품을 노백주(老白酒)로, 몇 대를 이어온 유명한 가게를 `노포(老鋪)`라 칭한다. 색깔도 마찬가지다. 붉은색 가운데 진짜 붉은 진홍색은 노홍(老紅)이라 부르고, 푸른색도 진록색은 노록(老綠)이라 부른다. 이렇듯 늙음의 개념을 결코 쇠퇴와 동의어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늙음 그 자체는 한편으로 가치를 품는다. 인생의 깊이, 세상의 이치, 학문의 묘미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제대로 깨닫게 된다. 늙음이라는 명제가 품고 있는 가치 사랑 역시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젊어서의 사랑이 불타오르는 뜨거운 정념이라면, 노년의 사랑은 편안한 안식을 전하는 노을과도 같다. 가치가 다름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듯, 젊은이의 사랑만으로 쏠리는 시선은 온당치 못하다. 오히려 수많은 시간을 겪어 낸 후의 사랑에는 깊은 배려와 성숙한 교감이 느껴진다. `늙음`을 `성숙`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삶이라는 에너지의 응축이다. 삶의 경함과 노하우가 최고조에 이르러 가장 지혜로운 시점, 바로 늙음의 가치이다. 젊음의 패기와 용기, 도전이 하나의 미덕이라면 신중과 배려, 설득과 중재의 가치는 또 다른 선이다. 우리 사회가 큰 불행 없이 발전해나가려면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획기적인 변화는 발전을 위한 조건이지만, 무게감 있는 진중함은 안정적인 평온을 유지하는 힘이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노년기라고 부르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오는 것을 한탄할 명분도, 거부할 이유도 없다. 자연스럽게 노화를 받아들이고, 절기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감내하자.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물론 점점 부자연스러워지는 육체의 노쇠는 안타깝지만, 실로 가치 있는 지혜가 주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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