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의 칼럼을 읽고 느끼는 바도 많았고 동의하는 부분도 많았다. 김 교수는 100세가 되도록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70대와 80대라고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기는 80세가 되니 인생의 참 진미를 깨닫게 되고 나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에 동화되고 자신의 분수 내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철이 들더라고 하였다. 사람은 출세하여 명예를 얻겠다는 의욕, 재화를 쌓아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는 본능, 가정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꾸려야 되겠다는 책임감 등으로 인해 개별적인 인성이나 성격의 차이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욕망에서 벗어날 때에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되고 그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감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80세의 고개를 넘어 살아오면서 내가 가진 능력, 앞으로 닥칠 상황, 그에 대한 처신, 방향 등을 분석하여 결정한 후 앞길을 선택하며 조심성있게 살아왔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잘했다는 선택보다는 미흡했다는 후회가 많다. 잘못을 깨닫고 수정하고 재도전한 결과 패가망신하지 않고 이나마 지금까지 가정을 유지하면서 살아왔고 부끄럽지만 이 글이라도 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가 하는 처사가 전부가 옳고 정당하며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있게 살 수 있을까? 신도 인간이 사악함을 보시고 인간을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고 창세기 6장 5-6절에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조금도 그릇됨이 없다면 신의 존재위에 있거나 아니면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존재라고 하겠다. 이같이 뉘우침이 없는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반짝하고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몇 번이고 봤다. 이같은 생각을 하면서 불쑥 단보 허균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1569년 11월 3일 강릉 초당에서 군수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초당과 둘째부인 강릉김씨 예조판서 김광철의 딸 사이에서 삼남삼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누이 허난설헌은 문인으로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허균은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9세 때 시를 지었는데 어른들이 칭찬하여 장차 큰 문장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허씨 문중을 뒤엎을 일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할 정도로 남달랐다고 했다. 그는 여러 시험에 두루 급제하였고, 그 중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하여 종3품의 관직을 부여받았다. 그후 자헌대부로 승진하여 형조판서가 됐고 1617년에는 정2품으로 승진하여 예조판서에 올랐다. 허균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사회제도의 불평등함에 불만을 품고 개혁을 꿈꿨고 서자라는 이유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등용의 기회가 막혀있는 제도며 당파의 분쟁으로 인재를 기용치 못하는 제도에 대해 쇄신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래서 소외받은 이들과 친교를 하면서 비판적인 행동을 했음으로 고위직에 있으면서 권세부리는 자들로부터 음해를 받게 됐다. 이즈음에 허균은 기성세력에 일침을 주는 호민론을 발표했다. 백성은 항민(恒民), 원만(怨民), 호민(豪民)이 있다는 것이다. 백성이 제일 두려운 존재임으로 백성을 위한 선정을 해야하고 백성을 무시하거나 군림하지 않아야 하고 더욱더 속이거나 거짓을 하는 것은 제일 악정이라고 했다. 이 세 부류의 백성 중 항민은 일반적으로 법에 따라 생활하면서 그날 그날을 연명해 가는 계층이고, 원민은 나라정책에 의하여 수탈당하거나 압제를 받으면서 고통스럽게 생활함으로 나라에 대해 원망이 많은 백성이며, 호민은 나라의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고 비리 관리를 배척하여 혁신의 기회를 노리면서 숨어있는 백성이라고 했다. 호민이 기치를 높이 세우고 새로움을 만들어내자고 외치면 항민과 원민은 각자의 힘을 다해 모여 들어 결과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이후 허균의 제자 기준격이 허준이 역모를 기하고 있다는 상소를 하자 정권의 일인자 이이첨의 강요로 대역죄로 몰아 심리도 없고 본인이 자백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능지처참형을 받아 50세로 생을 마감했다. 허균의 활동 당시에는 백성을 세 부분으로 구분했지만 지금의 현실은 모두가 호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악덕 정치 모리배를 가려낼 수 있는 몽둥이를 전 국민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몽둥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4년이나 5년마다 온다. 단지 꼭 필요한 것은 몽둥이를 이용할 대상을 정확히 판별해내는 것이다. 백성이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판별 능력이 없을 시에는 대책이 없고 발전의 동력은 멈춰서는 것이다.
최종편집:2024-05-21 오후 01:46:03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