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르신을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당위와 존경할 만한 노인이 없다는 볼멘 현실 사이에 놓여 있다. 심지어 노인에 대한 배제와 혐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가져본다. 이성을 지닌 인간세계에서 노인을 짐스럽게도 생각하는데, 하물며 무정한 자연세계에서 노쇠한 동물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물론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을 동물에 비교하는 게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리 동물학자들은 동물 역시도 인간 못지않은 충분한 감정과 정서가 있으며, 윤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존재라고 강조한다. 캐나다 원로 동물학자인 앤 이니스 대그 (Anne Innis Dagg) 는 그의 저서 에서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종전에 노쇠한 동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탓인지 이 책에 소개된 내용 상당수는 일화를 중심으로 한다. 70세를 넘긴 저자는 한 동물의 행동이 그 종을 모두 대표할 수 없다고 주의를 환기시키지만, 다채로운 내용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늙은 동물의 세계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좀처럼 먹이를 구하기 힘든 자연에서 `노쇠하고 쓸모없는 구성원은 철저하게 배제 당할 것`이라는 통념은 잘못됐다. 단적인 예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젊은 수컷 코끼리들이 난동을 부리고 관광객에게 해를 끼친 사건이 있었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 코끼리 개체 수를 조절한다며 늙은 코끼리를 당국에서 무리하게 도태시킨 게 발단이었다. 코끼리 무리는 암컷과 새끼로 이루어지기에 우두머리 암컷이 `가모장`으로서 무리를 이끈다. 가모장의 경험과 지혜가 없으면 코끼리 무리는 먼 거리를 이동하며 물과 먹이를 찾지 못한다. 고래도 늙은 가모장이 무리를 이끈다. 늙은 범고래는 휴식을 취할 장소나 연어가 다니는 길로 무리를 안내하고 사냥 전략이나 이웃 고래 집단의 방언 등 평생 얻은 지식을 전수한다. 또한 어미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깊은 물속으로 떠나면 대신 새끼를 돌보는 보모 노릇을 자처한다. 늙은 동물은 무리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종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위험이 닥치면 맨 앞에 나가 무리를 지킨다. 한때 우두머리였어도 시간이 흘러 낮은 지위로 내려가는 것을 달게 받아들인다. 저자는 늙은 동물이 오랜 세월을 살며 풍부한 경험을 쌓은 덕에 무리의 생존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너무 늙어서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무리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몰락하는 개체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도 아니다. 늙은 개코원숭이 수컷은 보초 노릇을 하고, 늙은 수컷 늑대는 호전적인 젊은 수컷 두 마리 사이에서 노련한 중재자 역할을 한다. 동물들은 생애 막바지에 이르면 지도력, 번식, 싸움, 사회생활에 흥미를 잃고 휴식과 여유를 찾는데, 열정이 소진된 늙은 동물이 구심점이 되면 그 무리는 훨씬 느긋하다는 것이다. 늙은 동물은 잉여의 존재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동물이 오히려 인간보다 슬기롭게 노년을 헤쳐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일과 현상들이 되풀이 되는데, 우리 사회는 노인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효과적으로 전수하고 나눌 수 없는 구조로 변해버렸는지 모른다. 노인들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고 존중받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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