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동향 출신 이심 회장의 `노년연가` 출간이 소개됐다. 내게는 1년 선배라 4,5년 간 교정에서, 등하교 길에서 만나며 소년시절을 보냈다. 70년대 나도 서울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는 그의 지인들을 통해서 근황을 듣고만 있었다. 건국대를 나와 삼기물산인가에 입사했고 그 후 삼성자동차공업사를 창업해 경영한다고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 출마를 한다고도 알려졌으며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법산 이웃마을 작천에서 국회의원 한 분 나오는가라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고, 상대가 여당의 중량급(강적) 실세인데 그런 그와 공천 경쟁한다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이라는 기사가 지상(紙上)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 후 노년신문을 발행하더니 대한노인회장을 두 번 연임도 했다. 그 노년신문에 내 사제(舍弟·최종동기자-성·칠·고지사장)가 재직할 때 `3등문사`인 나도 두어 번 기고한 일도 있다. 아마도 `어떤 날의 지하철 풍경`이 아닌가 한다. 그 기고문이 `내용과 용언`이 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 고쳐 써서 실은 일도 있다. 그나마도 동생의 그늘(?)이 아닌가 한다면 `3등코미디`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 훨씬 후(2015년) 선문대 교수 황송문 박사에게 세 편 글을 보냈더니 고담준론의 너무 현학적(衒學的)인 것도 안 되고, `···것이다` `···말이다`의 단정적 표현은 여운(餘韻)을 차단한다는 등 질책을 받은 일이 있긴 있다. 그래서 그런 정도의 편달의 수련을 거쳐야 문사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 특히 글은 퇴고(推敲)가 생명이라는 것도 알게 했다. 1980년대 어느 날 책방을 갔더니 이 회장의 수상록 `아흔 아홉보다 더 큰 하나`가 진열대에 나와 있었다. 동향이니까 반가운 마음에 표지 사진만 보고 바로 구입했다. 집으로 가는 사이에도 그 초교시절에 있었던 일 하나가 먼저 되살아났다. 그날 하교 길에 여나믄 명이 함께 걷다가 그 중 누군가와 서로 언쟁이 붙었는데 그 한 사람이 영춘이인 걸로 생각된다. 언쟁 끝에 엎치락뒤치락 드잡이가 났으며 누가 뜯어말렸는지 평정(?)은 되었고 길바닥에 놓인 책보를 들고 툭툭 털며, `이거 누구거야! 누군 누구야, 영춘이 형 것이지···`라 자문자답하던 이심 회장이 떠올랐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사는 쉬 잊히지만 특별한 일의 기억은 또렷이 각인이 돼 있어 오래 가는 것인지 지금도 선연히 남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소년 시절에 있었던, 어쩌면 아름다운 한 추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길에서 펴볼 수도 없어 집에 와서 열어보니 `산골아이들의 꿈`에 윤석은 당숙이고 영춘이는 고종이라고 돼 있어 지난날이 떠올랐다. 윤석 씨는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으며 영춘 씨는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내게 여운으로 남아 있다. 혹여 두 분이 보더라도 이른바 `개인 프라이버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내 스스로의 판단), 참 옛적 얘기이니 양지하시기 바란다. 1990년대로 기억한다. 내 그때 용산시장에서 장사할 때 참외 때문에 작천엘 갔더니 골목에서 이 회장의 백형(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존함도 잊었다)을 만나 인사를 했더니, `자네 집과 우리 집은 좀 다르게 지내야 하네···`라고 하였지만 그땐 그 의미를 미쳐 알지 못 했다. 그랬는데 오늘에 와서 보니 우리 7세(世) 선조 영(英)이 성산이씨 농서군공 이장경의 손서가 됐으니 우리는 성산이씨의 외손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여든에 철 난다`가 헛말은 아닌 것도 알게 했다. 특히 농서군공의 다섯 아들 모두 등과[五子具登科·李兆年 등]를 하여 삼남의 명문거족이 됐으며, 서울 양천 한강 기슭의 투금탄(投金灘) 얘기는 각박한 현세의 교범이 되어 지금도 회자가 되고 있다. 특히 `이화에 월백하고···`는 만인의 애창시조 가사이다. 이심 회장의 `노년연가` 출간을 보니 내 10여 년 전 "어릿광대의 길"이라는 제호로 낸 졸품(책)에 쓴 `노년시대의 단상`이 떠올랐다. 물론 이심 회장의 명저에 미치기란 어림도 없지만 그나마 써놓은 것이 비슷한 텍스트(Text)여서 조금 끼적여 보는 것이다. "(···) 엄혹한 세태는 노년들을 `잉여인간`으로 치부하는 극단논자도 있지만 한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오면서 그 이룩한 공과를 뒤로 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려함에는 무상함의 정회도 있다. 중국 속담에 있듯 `양자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쳐내듯 사람도 뒷사람을 앞 사람을 밀어내는 것(長江後浪催前浪 浮世新人換舊人)`이 우리들 인생사의 상규(常規)이니, 밤사이 몰래 내린 눈처럼 와버린 노년을 만감은 교차하지만 어찌 포용하지 않겠느냐는, 이 시대의 노년들이다. (···) ".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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