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작고한 소설가인 현길언 교수를 애도한다. 여수·순천사건 등 해방공간에 있었던 우리 현대사 중의 민족적 비극의 큰 하나는 `제주4·3`사건이다. 다른 여러 사건들은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논란은 좀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 정리 단계에 와있다. 그런데 이 `4·3사건`만은 공식으로는 특별법 제정하고 그에 따른 추념사업도 한다며 `제주4·3평화기념관`을 지어 `···평화문학상`까지 제정했지만 아직도 `제주4·3`을 보는 역사적 의미의 분분한 논란은 지표에서만 사라졌을 뿐 잠복 중이다. 국가권력이 양민을 학살했다고 변설(辨說)을 늘어놓지만 사실 그 양민 속에는 정부수립을 반대한 남로당원이 더 많았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넓게 보아 남한만의 건국 세력이나 그걸 반대하는 남로당이나 다 한 민족 한 형제인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피아 구분도 하지 않고(할 이유도 없지만) 한 쪽은 면류관 씌우고 한 쪽은 가시관 씌워 연옥(煉獄)으로 떨어뜨린 현대사의 비극인데도 말이다. 남로당 무장봉기일이 국가기념일이고 그래서 명예회복특별법이라고? 남로당의 국가 반란은 외면하고 군경이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 문제만 반인권적이라 단죄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그럴 양이면 가해, 피해를 구분하지 말고 모두 `비참한 현대사의 희생자`라 해야 할 것 아닌가. 북한 중앙당 지령 받고 반란을 선동한 남로당만 `호국 위패`로 승화시켜 보라는 듯 버젓이 성역(?)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특별법? 경국대전에도, 대명률에도 없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해괴한 율령이다. 1948년 5·10총선을 앞둔 4월 3일 새벽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남로당의 준동(蠢動) 세력과 그 세력의 총책으로 급파된 김달삼이 조종한 인민유격대가 12곳 경찰지서를 습격해 우익 인사와 그 가족을 살해한 테러에서 시작된 무장봉기가 사건의 전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토벌대도 남로당도 모두 민족적 비극인데 왜 공권력 행사한 토벌대만 양민 학살의 모든 책임을 지워 나락(那落)으로 떨어뜨리느냔 말이다. 제주 출신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1978)`이 세상에 나왔지만 친정부적 편향된 소설이었다는, 일반적 시각이었다. 이를 본 같은 제주 출신 현길언 소설가는 역사적 사실이 변질·왜곡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어서 `역사적 허위`라는 반론으로 맞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내 소설의 출발점은 제주4·3이었다`고 할 만큼이니 그 당위성이야말로 불문가지다. 그 혼탁한 시대에 그래도 `지성과 이성과 양심`적 참지성의 진면목은 현길언 소설가가 고고(孤高)히도 쏟아냈다. 당시 9살일 때 할머니, 삼촌 등 온 가족이 토벌군과 반란군의 화를 동시에 입었던 사건이었다고 했다. 성인이 되어 그때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한라산`을 썼으며, 계간지 `본질과 현상`에 `4·3`의 진실을 밝히는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노골적 좌편향 정부의 권력 앞에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외로운 투쟁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색깔론을 들먹이며 민변 등으로부터 노골적 압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은연중에 토로한 바도 있다. 근년에 와서는 편향된 논자들의 왜곡된 역사 기술의 책들이 서점에 널려 있고, 현행 중고교 교과서도 이런 교육부 지침에 따랐으니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국가 지도자는 정의가 실패하고 불의가 득세한 나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 하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너희들 재수 없어 이런 나라에 태어났다는 등, 대한민국 법통을 부정하는 역사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4·3사건`도 그 연장선상에서의 잣대로 보려니, 사건의 본질은 외면하고 진압 과정에서 나온 문제들만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선량한 제주도민도 `폭도`의 굴레를 씌운 것이다. 더구나 "4·3사건은 통일정부 수립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정치권력과 문화 권력을 아울러 장악한 우리 사회에서 그런 세태는 현길언 소설가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고, 복거일 사회평론가는 역설한다. 특히나 그는 `4·3`에 대한 기록은 현길언의 저서가 유일하다고 주장하고, 눈으로 보고 체험한 역사의 현장보다 더 엄정한 역사는 없다는 역설도 하고 있다. 또한 폭도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과장·왜곡한 거짓 사술(詐術)도 곧 벗겨지리라는, 복거일 사회평론가가 주장하는 현길언 소설가를 향한 위호하는 논변도 있었다. 산 역사를 증언하며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고자 고분(孤憤·홀로 분개하다)의 필봉을 들었던 그가 이제 고인은 됐지만 그의 작품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역사의 기록은 올바를 때에야 그 진가를 발휘할 지니···. 이 삼등문사도 `제주4·3`에 대해 지나친 편향이라 몇 번 항의의 글을 쓴 일도 있다. 이 현길언 선생을 떠나보내면서 늦게나마 외람된 눌변(訥辯)으로라도 애도의 소회를 적어 보는 것이다. 이 강토가 지켜드릴 터이니 천상에서 다 잊으시고 부디 영면하소서! * 외부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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