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는 박힌 바윗돌이고 철새는 굴러온 돌이다.
해마다 제비가 돌아오면 "봄이 왔구나" "봄이로구나"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초가집 처마 밑에서 올망졸망 새끼들을 부지런히 키워낸 제비부부가 몇 쌍이나 있었다. 자식들이 날개에 힘이 붙을 즈음이면 빨랫줄에 나란히 앉아서 강남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지지배배 작별 인사를 한다. 흥부네 제비나 놀부네 제비나 고향은 같은데 순진한 촌 골짝 어린이는 내년엔 흥부제비가 정말로 황금박씨를 물고 오라고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비가 한창 식구들을 건사 시킬 쯤에 앞산 뒷산에 소쩍새도 새끼를 키우기는 마찬가지다. 소쩍새는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떠는 제비와는 달리 소쩍새는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는 법이 없다. 배가 고파 우는 건지, 짝이 그리워 우는 건지, 그냥 소쩍거려 보는 건지 모르지만 밤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면 그놈의 소쩍새 우는 소리가 노인네의 가슴을 후려판다.
제비도 소쩍새도 한창 바쁠 때 뻐꾸기는 탁란 시켜놓은 제 자식을 찾으려고 왔다갔다 부지런히 설쳐 댄다. 에이! 고얀 놈!
오월에 벌어지는 시골의 모습들이다. 하얀 찔레꽃 향기는 누나의 분 냄새를 닮았다. 그 냄새는 슬픈 향기이다. 갓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누나의 꽃이다. 그래서 슬픈 찔레꽃이다. 아침저녁 아카시아 꽃냄새로 계곡이 꽉 찼다. 마른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비바람만 비켜간다면 올해 꿀 농사는 풍년이 되겠다. 겨울 내내 설탕물로 지탱해 왔지만 봄날에 온갖 꽃가루와 꿀로 수천마리의 대군사가 되었으니 이제는 달콤한 꿀로 보답하는 것이다.
작은 연못에는 원앙 한 쌍과 쇠기러기 두 마리가 주인 행세를 한다. 보통은 11월과 3월 사이에 이곳에서 지내다가 떠나는 철새인데 지금은 몇 년째 여기에 눌러 사는 텃새가 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이 된 것이다. 아마도 기온의 변화에 적응을 잘하고 작은 연못이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꺼리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먹을 것은 생존의 첫째 조건이니까.
아카데미 영화상으로 한국을 온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게 한 `미나리`라는 영화도 철새가 텃새가 되어가는 슬프고도 가슴시린 이야기 이다. 이민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이다. 성취의 기쁨보다는 고난과 쓰라린 상처의 기록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산업화와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내 집을 마련하여 텃새가 되는 것이 꿈이 되어 버렸다. 집 없는 설움을 겪으면서 살아온 범부와 필부들은 철새의 아픔을 안고 산다. 언젠가는 보금자리에 틀어 앉는 텃새가 될 것이 목표가 되었고 목적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 동네를 지켜온 까치가 아침부터 요란스레 지저댄다. 앞산 뒷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붕 위를 번잡스레 날아 다닌다.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려나? 굴러온 돌도 제자리에 박히기만 하면 주춧돌은 아니어도 디딤돌은 된다. 텃새가 된 까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