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우리 법산 영천최문 넷째 종녀인 최정숙 교수의 자서전을 받았다. 최 교수 어릴 때 이름이 `애숙`이었으니 그 이름에 걸맞게 참 예뻤었다. 대여섯 살이나 됐을 때 보고 60여 년이 지나서 이번 종갓집 상사(喪事·최열곤 전 서울시 교육감)에서 만났다.  그 애숙이가 미국 유학에서 석사를 거쳐 박사가 되어 백석대학교 교수로 봉직하고 있었다. 오늘의 이 장수 시대를 맞아 `삶과 죽음의 지향점`을 뛰어난 예지력(叡智力)으로 간파(看破)하여 `웰빙` 또는 `웰다잉`의 text(학문)에 분력(奮力)하고 있었다. 아직은 대체로 좀 생소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를 대비하려는 선견지명은 아니었을까 한다. 이른바 누구라도 해야 하는, 학술적 소명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첨단과학이라 하듯 `첨단학문(학술)`이라 할 만큼의 과제가 돼버린 `웰다잉`은 최 교수가 유학 후 상담심리학 강의를 하다 보니, 누구나 맞아야 할 죽음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닌가 한다. 본인 말대로 이를 계기로 `웰다잉`으로의 터닝 포인트가 됐으며, `대한웰다잉협회` 회장과 `한국호스피스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었다. 또한 `신한국인상`과 `보건복지부장관상`도 받았다니 그의 행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책 내용 대강(outline)을 보려 두어 장을 펼치니 내 고향 법산 옛 종갓집 사진이 나와 그걸 보는 마음은 타임머신을 타고 정든 산하를 유영(遊泳)을 하며 `추억의 법산`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었다.  "(···) 할머니로부터 하얀 모시 두루마기의 아버지, 광농하는 대농가의 주부로서의 분주한 어머니와 여럿 남매···" 등을 보니 우리 전래의 `삼대동당(三代同堂)`에서 있어 왔던 전형적 대가족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몇 장을 넘기다 보니 `가까운 이별` 표제어에 시선이 멈췄다.  《 (···) 그런 언니가 40대 중반에 위암 진단을 받았다. (···) 아침 수술 들어가기 전에 공중전화로 엄마께 전화를 하고 싶다고 하여 동전을 넣었더니 "엄마! 나 지금 멀리 여행을 가니 갔다 와서 전화할게요."라고 하고 얼른 전화를 끊고 한없이 울었다. (···) 》  사실 내 정작 듣고 싶은 얘기는 둘째언니(임숙)인데, 오래 전 그의 비보를 듣기는 했지만 전후는 알 수도 없었으니 그 당시만 해도 `아니, 이 무슨 소리냐!`를 되뇌기만 했다. 그런데 이를 보는 순간 내 모양 같지 않게 가슴 울컥,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내 심약(心弱)해진 탓일까···?  사리 분명하고 온화한 성정에다 그 정감 어리게 나를 지칭한 `아재 아재···`도 이제는 들을 수 없음에 가슴이 아려옴을 견디기 어려웠다. `왜 그렇게 일찍 갔느냐고···?`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누구나 보편적 `인성`은 있지만, 그(임숙)는 언행에도 허투루가 없는, 진중함이 있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하듯 그래서 내게 벗도 됐고, 흔히 쓰는 `커뮤니케이션(대화)`이 됐기로 그 비보를 듣자말자 참담한 애상(哀想)이 나오고 만 것이다. `왜 그렇게 일찍···`이를 나도 모르게 뱉은 것이었다.  "엄마, 나 지금 멀리 여행을······". 이 얼마나 간결하고도 정곡을 찌르는 명구인가! 그 `멀리`를 토해낼 때 인후(咽喉)의 경련은 없었으며 일상처럼 나오기는 했을까. 겉으로는 웃음 짓고, 속으로는 피눈물 흘렸을 그 명구는 어디서 나왔을까. 구원의 표상인 예수의 `다 이루었다···`를 변용(變容)했을까, 아니면 부귀도 영화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의 지혜`의 고결함에 순종(順從)을 했을까? 더러 저명 문사들의 명·시구도 보긴 했지만 `엄마! 나 지금 멀리 여행을···`은, 내 이처럼 가슴 저미는 시구는 전엔 보지 못했다. 굳이 말한다면 실명작인 옛시조, "아바님 가노이다 어마님 됴이 겨오(아버지 어머니 저는 갑니다. 부디 안녕히···)"가 떠오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그 고별의 순간을 맞으려 하기까지의 고뇌는 어떠했을까. 더구나 어머니의 마음을 가려야 함에다, 갈래갈래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를 때의 그 심상은 오열(嗚咽)이었을까, 아니면 승화(昇華)된 소천(召天)의 법열(法悅)이었을까. 누구나 이 길은 편작(扁鵲)도 거역할 수 없음이니 `인명재천`이라는 순결한 평정심(平靜心)의 발현이었음이 분명했으리라! 천상병 시인의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나 하늘로 돌아가리···"에 버금가는 명시였다.  `오냐, 잘 갔다 오너라···`가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냈다가, 끝내 청천의 벽력과도 같은 참척(慘慽)을 맞고야 말았을 때의 그 어머니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였을 것이었다. 생살여탈의 창조주가 원망스러웠을까, 아니면 `매정하게도 어찌 나보다 딸을 먼저 데려가느냐`였을까···? 아, 아! 원망스러운 창조주의 야멸참이여!  엄마도 그렇지만 딸도 병고와 사투하느라 몸도 마음도 수척했을 지어니, 눈물샘인들 다 고갈되지는 않았을까. 어머니의 그 미어질 흉중은 어땠을까를, 차마 상상하기도 죄민스러우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나? 굳이 내 심약함을 탓하기보다, 누구인들 목석이 아니고서야 "어찌 무심할 수가 있을까"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 먼 여행` 끝내고 그리던 모녀 상봉도 했을 지니, 고뇌도 오열도 다 던져버리고, 소천의 법열만 있는 천상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니`에 두 분이 의지하여, 영생 복락을 누리소서! 정숙(교수)의 그 독실한 신심으로의 가호를 받으소서! 부디 그러하소서!!!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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