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옛 속담이 있다. 이는 보잘것없는 겉모양이나 외관의 허접함보다는 알찬 내실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의 전통음식이 대부분 그렇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과는 크게 비교된다. 지금은 내실보다는 들어내 보이는 미각적인 유혹이 있어야 맛과 멋이 공유하는 세상이 된 셈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게 늘 시대적인 맛의 경계선이 되곤 한다.
지금 같은 무더위의 한여름. 소싯적 고향의 저녁 풍경. 할아버지표 수제 멍석을 깔아놓은 마당에는 쑥 연기가 머리를 풀며 모기를 쫓고 있었다. 장작불 가마솥에는 구수한 보리밥이 익어가고, 어느새 된장찌개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한다. 강된장과 곁들이는 호박잎과 풋고추, 시원한 우물물로 만든 오이냉국과 열무김치 등. 열일곱 대가족의 만찬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 유난히도 호박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몇 알의 호박씨가 수백 개의 넉넉한 이파리를 잉태하고 복덩이 같은 누렁이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니, 위대한 자연의 섭리는 늘 삶의 교훈이 된다.
한 지붕 아래 3대(代)가 생활하던 대가족이라도 명확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원칙이 따라, 순식간에 일사분란하게 정리가 된다. 디저트는 주로 강냉이와 감자, 개똥참외와 수박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름답고 넉넉한 가족애와 고향의 풍경이었다. 늘 `양보와 배려 교육의 실천 현장`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가족의 질서와 규칙이 늘 자연스레 지켜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웰빙과 함께 오히려 옛 토속음식과 시골 음식을 찾아가는 `엄마표 밥상` 추세가 된 지 꽤 오래다. 고향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게 구수한 엄마표 된장찌개다. 수없이 반복해 먹어도 계절에 따라 늘 새롭기만 하다. 아직도 재래적인 생활방식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소싯적 그 시절을 무척 그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비록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강산이 여섯번도 더 변한 지금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운 가족 간의 무한사랑과 자연 속에서 느끼는 인간애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다 털어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게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자식 농사가 가장 큰 농사`라 한다. 들깨 나무 한 알의 들깨 알도 한톨씩 다 모으는 우리네 부모님 아닌가? 세월을 결코 비껴가지 않고, 오직 씨 뿌려 거두는 일념뿐이다.
고향의 음식은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의 걸작품이요, 늘 고향의 맛과 멋이 함께 있다. 된장찌개는 뚝배기라야 제맛이 난다. 하 수상한 코로나 시절이 계속되는 때. 개구리와 매미의 노래소리가 가득한 고향의 밤. 울타리엔 오이랑 여주랑 주렁주렁 열리고, 청포도가 익어가고 호박꽃과 박꽃이 넉넉하게 피는 때.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고향의 아늑한 품 안에서 잠시나마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