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단어가 바로, 어머니와 장독대다. 왜냐하면, 매일 어루만지고 수시로 정성스레 닦는다. 새벽이면 막사발에 촛불과 정안수를 올려놓고 조상님께 빌고 또 비는 어머니의 비밀 아지터요, 금고(金庫)이기 때문이다. 올망졸망한 장독대는 오직 무한의 `자식사랑과 가족사랑` 대명사 같다. 늘 양지바른 곳에 있는 `바람`과 `희망`의 장독대는 보물이다. 벌들이 장독에 모일 때 뚜껑 쪽 윗부분이 아니라 장독 중간의 몸체에 달라붙는다. `장독이 살아 숨 쉰다`는 `장독 과학의 지혜다. 손맛의 비밀도 이 장독에 있지 않은가? 장독대를 둘러싼 비뚤거리는 토담, 작은 키도 늘 깡충거리며 안쪽을 기웃거릴 만큼 아담한 높이의 담장. 황토흙 사이는 간간이 작은 돌들이 마치 오순도순 가족 풍경 같다. 토담 위에 엎드려 있는 용구새(용마름)의 흐트러짐은 흰 모시옷에 긴 옥비녀를 가로지른 할머니 귀밑머리의 삐침 같다. 늘 단정함 속의 일탈(一脫)이라, 더 아름답다. 어머니는 한평생 오랜 습관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각양각색의 반들반들한 장독 뚜껑을 수시로 여닫는다. 소싯적의 옹기는 늘 정성이 듬뿍 담긴 어머니표 명경(明鏡)이다. 뚜껑을 열면 옹기 안의 맑은 식혜 물 위로 가을 햇살이 한 올 한 올 곱다란 수를 놓았고, 지나가던 가을의 뭉게구름도 그 안에서 두둥실 어깨동무를 하며 신나게 놀고 있는 것 같다. 육십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언제나 잊히지 않는 소싯적의 추억이 장독마다 담겨있다. 왜냐하면, 늘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한듯한 마음씨 좋던 옹기장수는 동동구루무와 함께, 고향의 소식과 소문을 함께 싣고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장독대는 그야말로 명품이요, 배고픈 초근목피(草根木皮) 시절, 시골 아낙네들의 한(恨)이 함께 서려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장류가 무척 귀하던 시절이라 지금의 냉장고처럼 보관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지방마다 장독과 장독대의 모양은 천차만별이요, 형형색색이다. 이유는 지방마다 다른 한옥의 설계방식과 주거문화의 특징이 장독대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중부 이북의 장독은 비교적 입이 크고 배가 홀쭉하며 키가 큰 편. 반면에 남부의 독은 배가 크게 나온 대신 입은 작다. 일조량의 차이를 고려한 장독 구조요, 지혜로운 조상의 `장독 과학`이 숨겨져 있다. 이유는 남부지방은 중부에 비해 기온도 높고 일조량이 많아 수분 증발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장독의 입을 작게 만들었다 한다. 필자의 대학에는 캠퍼스 곳곳에 세계 최다의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장독이 수만 개나 진열돼 있다. 한 폭의 동양화요, 명품 전시장이나 진배없다. 특히, 옥상에는 `전국 장독대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장독 애호가 총장이 한평생 모은 탓에 가득 차 있다. 장독대만 보면 언제나 참 넉넉한 마음이 든다. 이유는 마치 어머니를 보는듯하기 때문일까? 사랑채 할아버지의 대(大) 곰방대 터는 소리, 윗채 아버지의 큰 기침 소리, 부엌 어머니의 거을린 삼배 앞치마 폭 만큼이나, 배고픈 삼대(三代)가 함께 옹기종기 장독대처럼 살았던 대가족 시절. 그곳에는 무한한 사랑과 배려, 무언(無言)의 질서와 위엄과 규율이 분명히 있었다. 참 교훈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장독대가 곧 가족사랑의 씨앗이 되어,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와 장독대보다 더 감동적인 단어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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