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춘기를 지나 20대 전후일 때 한 선배가 자기 인척 여중 3년생과 친해 보고 맘에 들면 장래까지 생각해 보라는 일이 있었다. 무남독녀로 자라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 교수를 꿈꾸는 그와 `글` 쓰겠다는 내겐 반려가 되기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첨언도 주었다. 그로부터 반세기도 더 지난 어느 날, 젊은 날 `미완의 로망`이 다시 떠올랐다. 그도 나도 각자의 길은 갔지만 나는 결코 잊혀질 수가 없는 일이 재현된 것이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저서(수상록)에서 그의 여중시절 교우들 얘기 중에 `프레이그런스`가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프레이그런스(이하 프)에게는 그때의 내 존재감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의 이름에 香자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쓴 은어가 프레이그런스다. 6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이른바 러브레터를 쓸 때였으니, 이름은 은어를 쓰는 것이 더 로맨틱했으며 그것이 대세였다. 그때 나도 글을 쓰겠다고 했기에 프에게 러브레터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코미디이지만 말이다. 이게 웬 일인가. 만감의 교차보다 어쩌면 `옛 풋사랑`을 찾을지도 몰라 나 혼자 허허 웃고 말았다. 그땐 서로 마음을 주고받아 신뢰가 쌓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프로포즈`가 되기 때문에, 누구도 섣부르게 마음을 표할 때가 아니었으며 끝내 그런 일은 없었다. `사랑`이라는 말도 고상한 언어였으며 `연애`라는 말은 오히려 격이 떨어지는, 천박한 말일 때였다. 프는 애숭이 고교생이 되었고 나는 군 입대했다. 그때 주고받은 편지가 대여섯 번인가가 있었지만, 역시 도타운 우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어쩌면 너무 서로 `순진`인지 이른바 `맹탕`인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아련한 추억이 있었기로 향기(?) 넘치는 편지는 아직도 갖고 있다. 어느 편지에서는 자칭 `가시내`라고 썼으니 덜 익은 풋매실이듯 청순미를 품었으며, 비바람 눈서리를 모르는 야생화 같기도 했다. 명시를 인용하는가 하면 영화 본 얘기와 `비가 옵니다` 등의 자작시도 보냈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펼치고/ 비는 뜰 위에서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같이/ (···) 중요한 선생님(나를 지칭?)의 `빗소리`가 마음속에 깊게 파고드는 밤입니다/ 이렇게 빗소리가 사무쳐오는 밤이면 무언가는 표현을 해야겠는데···/ 그렇지만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무언가는 표하려 펜을 놀려봅니다/ (···) 화 나셨어요?/ 화는 내가 더 많이 내야겠어요/ (···) 2주 전에 보낸 편지 받았느냐고 했지만 나는 아직···/ (······)" `제야(除夜)`를 `제석(除夕)`이라 쓴 듯한 시에는 "올해도 마지막 가는 밤이어니/ 가는 나이 붙들고 울어볼까나/ 붙들고 매달려도 가겠거늘, 가고야 말 것을···/ (······)". 내 제대가 가까워지던 때는 "이불 밑에 발 넣고 얘기할 날을 기다리며···"도 썼으니 어쩌면 로맨틱하기도 했지만 에로틱(?)이라고 하면 내 천박한 본심의 발현일까···? 지금도 그것이 프의 `풋사랑`일 것이라 예단하면 그도 역시 `특권`인 방년을 맘껏 구가한 것은 아니었을까가 맞을 것도 같다. 나는 제대 후 직장을 가졌고 내 생활에 몰입하다 보니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들은 소식은 그는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갔다는 정도였다. 10여 년 교류한 것으로도 찾고는 싶었지만 그럴 명분도 약하고 이름하여 로망이라고 할 만큼도 아니어서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기려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앙 유력지(동아일보?)에 프의 `독자투고문`이 실렸는데, 해외여행 갔다 돌아오는 기내에서 있었던 일을 적은 칼럼이었다. 고교 교사 신분이었으며 짐작으로는 미혼일 것도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기혼자였으니 더는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나눈 우정(?)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미진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값진 한때를 보낸 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은 이 나이되도록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아련한 추억은, 마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했나니라···`의 시인 유치진의 `연애편지`를 연상케 했으며, 지난날 인텔리 소프라노 윤심덕의 `사의 찬미`와 마포 갑부 청년 지식인 김우진과의 세기의 로맨스, 또 시인 모윤숙(毛允淑)이 이광수(李光洙)를 향한 연심(戀心)으로 쓴 `렌의 애가`에 나를 비유하면 이거야말로 언감생심이겠지? 그러나, 사실 이도 저도 아닌 지난날을 떠올리자니 오히려 쑥스러웠지만 프의 그 방년일 때를 상상하며 통화를 했다. 그는 교수를 끝으로 노년을 즐기고 있었으니 나의 이 3등문사는 뭔지 모를 `주눅`이 드는 것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교류는 있었지만 서로 결혼 `기역`자도 표한 적이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때 `이불 밑에 발 넣고···`,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드는 밤···`은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이른바 액션도 없는 `청맹과니`라는 질책을 내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남편과 두 아들, 사회적 명성도 있는 프는 `꽃나이`일 때 내게 준 `이불···`에 대해 지금 어떤 상념(想念)을 갖고 있을까가 몹시도 궁금한 오늘이다. 언제 다시 만나 커피 잔 기울이며 옛이야기 할 날 있을까 우려(왠지···) 반, 기대 반이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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