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6.1.1.자로 사무관 초임 발령을 받고 정든 고향를 떠나 영천군으로 근무 발령을 받았다.영천 금호부읍장, 민방위과장, 식산과장을 만4년2개월동안 타향에서 근무하다가 1990.2.15자로 고향 성주 새마을과장으로 발령 받아 돌아오게 되었다
비록 객지 땅 영천군에 근무하였으나 주민과 화합하고 동료직원과의 유대를 돈독히 하여 보람있는 공직생활로 떠나올 때는 성대한 환송의 대접을 받았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면서 초창기 새마을사업을 한창 시작할 때부터 직원과 계장 과장으로 10년간 재직하면서 마을안길 확장, 농로 확장, 지붕 개량, 농촌주택 개량,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추진하는 등 그야말로 새마을사업의 산증인으로서 성주군 방방곡곡을 누비며 온 정열을 다 바쳐온 지난 날을 되새기면서 고향 발전에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기로 다짐을 하였다.
성주군의 대 역사인 성주댐이 1994년 12월경 담수를 앞두고 막바지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 될 무렵 아마 1992년경으로 기억이 난다. 당시 신동규 부군수님 지휘 아래 뽕밭과 풀숲으로 뒤덮인 33.000평방미터(10.000여평)의 성밖숲을 개발해 쾌적한 성주군민의 휴식공원으로 조성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구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사업자체를 어느 과에 배당할지 고민이 되었다. 모두가 맡아서 추진할 과가 없었다. 건설과 도시업무부서도 반대하고 해서 부득이 새마을과에서 맡아 사업을 추진해 보자고 하였다.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 줄테니 하면서 부군수께서 달랬다. 그러나 직원들은 모두 반대했다.
나는 한번 추진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직원들을 설득하여 똑똑한 기술직공무원(당시 배용규 토목직 공무원)을 배치받아 김동해 개발계장과 원팀이 되어 밤낮없이 설계작업과 사업계획를 수립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뽕밭을 완전히 제거하고 잔디광장과 주변녹화작업 광장주변 석축쌓기 소나무 숲거리 조성, 산책로 느티나무숲 조성, 대형바윗돌로 조경사업 조성, 광장주변 지하수를 끌어올려 수로를 조성하여 항상 물이 굽이 흐르게하고 화장실 음수대 체육시설(운동기구) 그늘막 조성, 꽃길 조성 등 그야말로 군민휴식공원화 사업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추진하려니 법적문제가 가로 놓였다. 바로 인근 이천변이 상수도 취수장으로 상수도 보호구역에 묶여있어 도시과에서 개발할 수 없다고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부군수님과 나의 생각은 오히려 뽕밭으로 그냥 두면 오물로 뒤덮여 상수도 취수에 오염이 발생할 우려가 크니 깨끗이 정비하여 잔디광장과 꽃길 나무숲으로 가꾸면 더 좋지 않겠냐고 하였으나 적극 반대하였다. 나중에 감사에 걸리면 문책이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신동규 부군수님께서 우리 둘이 책임지고 진행하자고 하였다. 나도 성주군민을 위한 사업인데 사람 잡겠냐면서 사업시행 공문에 부군수와 새마을과장(문재환) 둘만 사인하고 밀어 부쳤다. 직원들은 혹시나 염려되어 사인하지 않았다.
지저분한 뽕밭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니 성주군민 모두가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