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능소화의 계절인가 보다. 이맘때면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꽃이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어느 집 대문 옆에 핀 능소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은근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에 한참을 취해 있다가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황토 십리길에는 군데군데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무리 지어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열심히 사진을 찍어 페북에도 올리고 단톡방에도 올리며 우리 동네 자랑을 하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볼 수가 없어서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아쉬움에 젖게 된다.
`능소화(凌霄花)`
능가할 능 자라고도 하고 깔보고 업신여긴다는 뜻도 담겨있는 능(凌) 자와 하늘소(霄) 꽃 화(花)자로 된 한자의 뜻을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가진 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능가하며 하늘마저 업신여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능소화는 도도한 만큼 더 애틋하고 각별한 마음을 닮아있으며 조선 시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어사화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와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심어 기르는 덩굴나무이다.
길이는 8~10m쯤이며 곳곳에서 공기뿌리가 나와 다른 물체를 붙잡고 줄기는 덩굴진다. 주로 7~8월에 피는데 9월에도 볼 수가 있어서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일반 꽃보다 뿌리에 가까운 꽃봉오리부터 먼저 피고 시간차를 두고 꾸준히 피고 지는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꽃말은 기다림과 그리움, 영광, 명예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양반가에만 기를 수 있는 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전설로는 옛날 예쁜 소화라는 궁녀가 왕의 사랑을 받아 빈이 되어 빈의 처소에 자리 잡게 되었지만 그 후 왕이 빈의 처소를 찾지 않게 되고 다른 비빈들의 음모로 인해 궁의 가장 깊은 곳으로 밀려나게 되어 소화 빈은 그저 왕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안타깝게도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게 왕에 대한 그리움에 지쳐 끝내는 내가 담 가에 묻혀 오시는 왕을 기다리겠노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되고 몇 년이 지나고 어느 여름날 빈의 처소를 둘려진 담을 덮으며 주황색 꽃이 덩굴을 따라 예쁘게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능소화라는 슬픈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금등화라 부르기도 하는 능소화는 동의보감에서는 부인병에 널리 쓰이는 약재로도 활용되었으며 줄기와 잎 모두 약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능소화 꽃무리를 만나게 된다면 기분 전환도 되고 지친 몸과 마음이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도 황토 십리길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가 자태를 뽐내는 가운데 수명을 다해 통째로 바닥에 툭 떨어진 꽃송이들이 뒹굴며 시들어가던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 오른다.
그래도 낙화가 되었어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능소화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능소화는 전국적으로 많이 피어 있는데 달성의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와 경남 고성의 학동마을, 김해 봉리단길, 담벼락 뚝섬 한강공원 등, 많은 명소들이 지역 곳곳에 있어서 가족과 휴가 겸 한 번쯤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은 옛 서부역에서 청파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게 이어진 높은 담벼락에 능소화가 참 아름답게 피어 있었는데 도시 정비로 구청에서 다 제거하였기에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다.
능소화가 필 무렵이면 한해의 절반이 지나고 후반기를 맞는 시기이다.
두달 이상을 피고 지며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주면서 능소화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삶이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고 또 도전해라, 지난 반년을 잘못 살았더라도 나머지 반은 새롭게 잘 준비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가르침을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는 유월 보름 유두절이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유두 떡 빼먹으러 들녘으로 다니던 추억이 생각나는데 지금은 그런 옛 풍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오래도록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되살렸으면 참 좋겠다.
내일 모래면 초복(初伏)이다. 삼복이 들어있는 7월과 8월, 이 무더위 속에서도 능소화는 피고 진다. 오시지 않는 왕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을 품고 죽었지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소화 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지금 지루한 장마가 지겹고 7월의 뜨거운 열기에 지쳐서 힘들어도 이 여름을 건강하고 슬기롭게 잘 보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