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故鄕)의 사전적 의미는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이라고 되어있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어서 그리움의 대상이고 타향에서 곧장 찾아갈 수 없어서 안타까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면서 일정한 형태로 나에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라고도 한다. 그리고 고향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람 외에 산천이라는 자연도 포함되기에 고향 산천이라고 한다. 생물학적 탄생과 일치시켜 어머니와 같이 보기도 한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어머니가 아닌가 싶다. 고향 산천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와 자비의 미소가 생각나게 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이전에는 고구(古句; 옛 언덕) 가향(家鄕집있는 마을) 벽향(僻鄕 먼 외진 고을) 향리(鄕里 고향마을)라고도 불렀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관(出鄕關),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며 그런 사람은 나그네요 그 삶은 타향살이며 그의 고향 그리는 시름은 향수(鄕愁)며 객수(客愁)라고 하였다니 그 상황에 따라 실로 다양한 단어가 있음은 우리 민족의 고향에 대한 심성이 어떠한가를 알 수가 있으며 고향을 표현하는 말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참으로 애틋하고 구구절절한 것 같다. 나의 고향은 고령과 인접한 성주군 금수면 후리실이라는 곳으로 첩첩산중 하늘 밑 첫 동네이다. 그 흔한 신작로도 없어서 면 소재지인 광산리까지 십리 길을 걸어서 금수국민(초등)학교를 다녀야 했고, 가천면의 천창장을 갈 때도 이 십리 길을 걸어서 오가던 추억들이 가물가물 기억이 난다. 채 50호가 되지 않는 동네라 누구 집 숟가락 숫자가 몇 개인지 다 안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그 당시는 정을 주고받으며 오순도순 살던 시절이었다. 가난하지만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대문도 없이 사는 인심 좋기로 소문난 평화로운 마을이었고 유년 시절부터 집을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추억이 쌓인 그 고향으로 나는 지금 시간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멀리 가야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야말로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산 그 사이로 다랑이 논과 비탈진 밭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의 한숨이 담긴 고개와 골짜기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벽진장을 가려면 꼭 넘어야 하는 대실재, 나무하러 갈 때 자주 넘던 매미재, 장지바우(장수바위)골, 텃골재, 이양골, 김천장 다닐 적에 넘는 고개 살티재 등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이름들이 많지만 무수한 날들을 셀 수 없이 오르내린 나의 발자취와 사연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언젠가는 그 골짜기와 고개들을 차례차례 한번 다녀보고 싶다. 김천 대덕까지 이어지는 무흘구곡의 수려한 경치는 누구나 감탄을 자아내게 되고 소풍 가서 처음 본 선바위는 너무나 까마득히 높기만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물이 흐르고 흘러서 고령 고을을 거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데 성주와 고령은 이뿐만 아니고 천하 명산 가야산을 함께 품고 있어서 한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한번은 어른들 따라서 고령장에 가서 맛있는 국밥을 먹었던 추억도 잊을 수가 없다. 또 국회의원선거도 같이하는 아주 가까운 이웃 동네이다. 나랑 한동갑인 옆집 봉철이는 매일 만나서 온 동네를 함께 쏘다니며 놀았는데 나보다 1년 먼저 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자주 어울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고부터는 대구와 서울이라는 공간적 거리는 있어도 가끔 연락도 하고 지금도 매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태수, 영득이, 정득이 천식이 호적 이름이 아닌 아명을 부르며 매일 함께 학교 가고 뛰어놀던 그 친구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오늘 불현듯 만나보고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가끔 만나서 소주잔도 나누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동심에 젖기도 했는데 모임을 못 가진지가 한참이 지났나 보다. 그중에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 대표와 군에서 별을 몇 개나 달았던 친구도 있어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가까이하기에는 조금 먼 당신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향우회 모임에도 나가서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도 나누기도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과 이런저런 핑계로 요즘은 자주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타향객지 생활을 수십 년 하다 보면 그래도 언젠가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친구도 고향 친구가 제일 좋더라는 얘기를 하게 되는데 백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태어난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 전 연어가 바다로 나아가서 몇 년을 잘살다가도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알고 머나먼 강의 상류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TV를 통해 보면서 크게 감동한 적이 있었는데 근본을 찾아가려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돌아보면 나 자신도 고향을 떠나 타관 객지 생활 한 지가 적은 세월은 아니었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나그네길을 떠돌면서 파랑새를 찾아 평생을 헤매며 뜬구름만 잡다가 이제 다 늙어서야 고향 하늘을 날고 있는 파랑새를 찾게 되다니 나야말로 참 바보같이 산 인생이었나 보다. 새치 고개 저 너머 미지의 세상이 궁금하여 고향을 떠나온 날이 엊그제 같은데 꿈 많던 그 소년은 어느덧 황혼에 접어들어 후회만 남고 지나간 추억을 더듬는 마음만 소년으로 사는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타향객지에서 부와 명예를 잡으려고 도전하고 청춘을 불살랐던 지난날을 정리하고 떠나온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서 남은 삶을 보람되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험난한 길이다. 가다가 곰한테 잡혀 먹히는 일도 부지기수이고 수로가 막혀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목적지에 도착하여도 기다리고 있는 천적에게 또 잡히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서는 알을 낳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자기의 몸마저 새끼의 먹이가 되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연어의 위대한 일생을 보면서 우리는 어버이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을 느끼게 되고 삶의 교훈이 되는 참된 이치를 배우게 된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본마음이면 귀향(歸鄕)이요, 어쩔 수 없으면 낙향(落鄕)이라 하였는데 고향을 지키면서 평생을 눌러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의 주인이며 우리가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 집은 오래 전 헐리어 빈터만 남아있고 잡초만 무성해서 가끔 들릴 적마다 가슴이 아프다. 고향 산천은 변한 게 별로 없는데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남아있어도 옛날 모습이 아니다. 외지인들이 많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낯설기만 한 고향, 유행가 가사 제목처럼 고향 무정(無情)이 되어버린 내 고향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고향 유정(有情)으로 바꾸고 싶다. 조상들의 산소도 자주 찾아뵐 수 있고 어릴 적 천방지축 뛰어놀던 동산에 올라서 마음만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보람된 나날이 될 것이다. 태어나고 길러준 어머니의 땅, 그 고향으로 나는 돌아가고 싶다. 기다리는 이 없고 찾아갈 집도 없는 떠돌이 나그네 신세지만 그래도 정든 산과 들, 고향 산천은 나를 반겨주리라. 그래서 고향의 하늘 아래에서 고향의 맑은 공기도 맘껏 마시며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과 막걸리도 주고받으면서 옛날얘기도 하고 고향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여생을 보내다가 언젠가는 조상님 계시는 선산 한 모퉁이에 조용히 묻힐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최종편집:2024-05-14 오전 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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