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왔다. 그동안 대구에 있는 조카들이 선산의 산소 벌초를 알아서 잘하였기에 코로나 핑계 삼아 몇 년째 가지 못하다가 올해는 꼭 내려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서둘러서 하루 전에 출발하였다. 이번 벌초 행사에 막내아들과 꼭 함께하고 싶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지라 토요일에는 학교 수업을 해야 하다 보니 나 혼자 갈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아이들에게 집안 대소사나 벌초나 시제 등 연례 행사를 직접 체험하게함으로써 조상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주 만나기 힘든 집안 어른과 사촌, 육촌, 형제와 친분을 쌓는 기회도 되어서 좋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도 내년에는 막내를 꼭 데려가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오전에 사무실에서 대충 일을 처리하고 오후에 서울역으로 가서 왜관까지의 차표와 다음날 올라오는 표를 예약하고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예전에 보지 못한 강한 태풍이 멀리 남쪽 바다에서 올라온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벌초하는 날에는 직접 영향권에 들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라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가을빛이 내려앉은 들녘에는 풍성한 결실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서 이제 곧 황금물결이 일렁이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본다. 작은 역까지 정차하면서 천천히 가는 기차여행이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사고에 젖은 우리 기성세대들은 옛날, 걸어서 학교 다니며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고 지게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그저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여유롭고 한갓지게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비둘기호 통일호 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서 새벽에 용산역에 내리면 호객행위 하는 아줌마들을 피해 버스정류장으로 냅다 뛰던 시절도 있었는데 다 옛날얘기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왜관역에 내렸을 때는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성주읍으로 가는 버스가 2시간에 한 대가 있는데 5시 차는 떠났고 7시 차를 한 시간 이상 기다렸다 타야 했다. 예전 같으면 동내 구석구석 가는 버스노선이 많았는데 농촌인구 감소와 또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다 보니 손님이 줄어들었으리라. 이용객들이 많던 시절 이곳에 버스가 도착하면 삶은 달걀과 셀렘민트 껌이랑 과일 등을 들고 버스에 올라와 경쟁적으로 판매하던 누나들이 생각난다. 그렇게 북적이던 왜관역이 너무 한산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 시절 막차를 타고 종점인 면 소재지에 내려서 깜깜한 밤길을 십 리나 되는 집까지 걸어서 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다.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성주읍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채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출발할 때 계획은 무휼 구 곡 첫머리인 봉비암 아래 영남 성리학의 거두인 한강 정구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회연서원이 있는 동네 양정 누님댁으로 가서 일박할 예정이었는데 날씨도 좋지 않고 차편이 여의치 못해서 읍내에서 아주 오래된 D 여관에 짐을 풀고 근처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주인아주머니가 멀리서 오신 손님이고 현금으로 결제해서 고맙다면서 특실을 내어주어 넉넉한 고향 인심에 기분 좋게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다. 이튿날도 어제 갔던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서울에서는 만원 정도 받는 맛있는 뼈다귀해장국이 육천 원이다. 싼 가격에 놀라고 맛에 다시 놀랐다. 대구에서 오는 조카의 전화를 받고 군청 앞에서 만나 고향마을로 달려갔다. 대전과 현풍 쪽에서 온 조카들과 합류를 해서 빌린 예초기와 벌초용 장비를 챙겨서 산소로 향했는데 동네 바로 뒷산인데도 나무가 우거져서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낫으로 나무를 치고 헤치면서 겨우 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번번이 띠를 입히고 잔디 씨까지 심었는데도 부모님의 산소 봉분은 많이 상해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내년 한식 때는 제대로 보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와중에 비가 쏟아져서 조상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며 정성껏 풀을 베고 간단하게 준비해 간 제물을 올려서 성묘하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비와 땀에 젖어 꼴은 엉망이었지만 마음만은 상쾌한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날을 잡아서 온 집안 자손이 다 모여서 함께 하면서 같은 뿌리의 연대감도 느끼고 핏줄의 정을 나누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서로 자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아이들은 일가 어른과 집안 형제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 자신도 큰집의 사촌들을 만나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함께 모일 수있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해 본다.   벌초를 마치고 둘러보는 고향마을은 예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이 변해있었다. 우선 집을 현대식으로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였고 내가 태어나서 자란 우리 집은 진작 팔려서 헐리어 빈터만 남아있고 주변에는 그런 집들이 꽤 많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둘째 형 소유의 옛날 집도 얼마 전에 팔렸다고 하니 이제 고향이라고 찾아와서 갈 곳이 아무 데도 없게 되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고 한 옛 어른의 말씀이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올 때마다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아 서글퍼지고 세월의 덧없음이 느껴지는 고향 방문이다. TV에도 자주 소개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할매묵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우리 어머니와 갑장이신 원조 할매는 백세 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며느리가 물려받았다가 지금은 손자가 운영하면서 손님을 맞고 있다. 왜관역으로 와서 열차 시간을 변경해서 예상보다는 일찍 상경하게 되었는데 몸은 조금 피곤하여도 마음만은 가슴에 뭉친 응어리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조카들과 함께 산소 벌초하고 오랜만에 조상님께 성묘도 하고 동네 사람들 만나 정담도 나누었던 이번 고향 나들이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었던 여행이었고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찾아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최종편집:2024-05-14 오전 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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