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동여지도 목판본『대동여지도 목판본』은 지금으로부터 162년 전인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손수 제작한 것이며 그것으로 인쇄한 지도가 대동여지도이다. 김정호는 우리나라의 국토를 남북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렇게 제작된 22권의 책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 크기의 대형 전국지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동여지도 목판본은 60매로 추정되며, 이중 1/5 정도에 해당하는 12매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수령 100년 정도의 피나무 위에 새겨진 목판은 대체로 가로 43cm, 세로 32cm 내외이며 두께는 1.5cm 내외이다. 남아있는 11매의 목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나머지 1점은 숭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대동여지도 목판본은 조선말에 불태워져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최남선 일가가 알 수 없는 경로로 이 목판본을 인수하고 1924년 조선총독부에 매각하게 된다. 조선총독부는 목판본의 존재를 숨기고 역사 왜곡을 시작하는데, 1925년에는 ㅇㅇ일보에 `고산자를 생각함`이란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는 대동여지도가 우리민족의 무지로 인해 불태워지고 제작자인 김정호는 감옥에서 죽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교과서나 각종 자료에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심지어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내용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져 우리나라 교과서에 이와 유사한 내용이 여러차례 실렸다고 한다. ▣ 대동여지도 목판본의 발견과 성주 안언역(安偃驛, 案彦驛)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11매의 목판은 1995년 한국역사문화지리학회에서 전국 고지도 목록을 작성하는 과업을 수행하던 중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관리 직원인 소재구씨가 k-93(확인되지 않은 문화재)으로 관리되던 목판을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특히 목판본의 진위 여부에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지도의 교정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성주의 안언역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원래 부분을 깎아내고(사진1) 교정하여 붙인 부분(사진2)이 발견된 것이다. 교정한 내용을 중심으로 확인 작업을 거친 결과, 1861년 초간본에서 3년 뒤인 1864년(고종원년) 갑자본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진위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조선시대 성주의 안언역조선시대에 부산에서 서울을 가려면 영남대로를 이용하였다. 영남대로는 세가지 길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영남좌로`, 즉 `열닷새(보름)길`이었다. 울산〔염포(鹽浦)〕, 경주, 영천, 의흥, 의성, 안동, 풍기, 죽령, 단양, 한양까지 길이며, 두 번째는 `영남대로`인데 부산〔부산포(釜山浦)〕, 밀양, 청도, 대구, 안동, 선산, 상주, 조령, 음성, 이천, 광주 등을 지나 한양에 이르는 길로 `열나흘길`이었다. 마지막으로 `영남우로`는 내이포(乃而浦, 진해, 통영), 현풍, 성주, 금천, 추풍령, 영동, 청주, 죽산, 양재를 지나 한양에 이르는 `열엿새길`이었다. 고려에서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 22개 역도와 525개 역이 있었다. 성주에는 화원현의 설화역, 고령군의 무계역, 안언역, 답계역, 팔거현의 고평역 등 5개의 역이 있었는데 중심역이 안언역이었다. ▣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안언역성주를 관통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한 이래 남성주 나들목(IC)이 2007년 11월 30일 개통하였다. 남성주 나들목 일원은 안언역이 있었던 곳으로, 과거길에 올랐던 선비들의 염원이 담긴 조산베기와 안언역 찰방(察訪)의 공적을 기린 이후현장거사비(李候顯章去思碑)가 공사과정에서 발굴되어 남성주 나들목 인근으로 옮겨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현대의 고속도로와 아련한 역사 속의 안언역이 공존하는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용암면의 안언역재건회가 그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용암면과 안언역재건회를 중심으로 안언역 복원문제도 검토되었다고 하는데 동헌(東軒), 제리청(諸吏廳), 양마청(養馬廳)과 마당(馬堂) 등이 있었다고 한다. ▣ 성주와 철도 이야기성주를 지나는 철도는 없다. 철도가 없으니 당연히 역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일이다. 그런 와중에 2019년 초부터 김천과 거제를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 성주역 유치 문제가 지역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범군민 운동으로 번져갔다.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 유튜버 활동도 하게 되는데 그 이름이 `삼선비 오만소리` 채널이었다. 이 채널에 한개마을 이윤식 전 한개마을보존회장이 출연해서 한개마을과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일제 수탈의 수단으로 철도가 이용된다는 점, 당시 성주에 독립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점, 성주의 지맥이 끊기는 점 등이 반대의 명분이 되었고, 토질과 교량폭 등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성주로 철도가 오기 어려웠다는 점 등을 설명해 주었는데 매일신문에서도 심층 보도된 바 있다. 다행히 성주는 당초 계획에는 신호장 밖에 없던 노선에 성주역 신설을 이끌어 냈다. 이는 5만 군민의 하나된 염원의 성과이고 삼선비와 같은 자발적인 지역민의 참여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름 또한 마땅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성주는 어떤 도시인가`라는 것을 고민하면서 뜬금없는 대동여지도 목판본 이야기가 나오고 현대의 고속도로와 옛 성주의 역과 관련된 숨은 이야기, 철도 이야기와 한개마을 이야기도 하였다. 우연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감춰진 보석처럼 성주의 역사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글을 쓴 이유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성주역 노래를 들으며 삼선비와 그때를 추억한다.
최종편집:2024-05-14 오전 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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