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한 일간지는 `부활하는 미(美) 영웅, 잊히는 한(韓) 영웅`이라는 키워드 기사를 실었다. 미국 정부가 군인에게 주는 최고 무공훈장인 `메달 오브 아너`의 얘기가 요지(要旨)였다.   미국이 1863년 첫 수훈자가 나온 이래 지금까지 3500여 명이 명단에 오르고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수여한다는 거였다. 이에 반해 우리는 `잊혀지고만 있다`를 지적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시상식에서는 사병도, 장군도 구분 없이 일괄 거수경례를 한다는 것도 더 보탰다. 우리도 살신성인의 군인정신을 실천한 영웅이 여럿 있음을 국민들 가슴에 새기고 있다. 특히 베트남 파병 때 훈련 중 한 병사가 안전핀을 뽑은 채 놓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순직한 강재구 소령, 역시 베트남 참전 동굴 수색 중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안고 전사하여 다른 병사를 구한 이인호 소령, 백사장 고공 상공에서 강하 훈련 중 기능 고장을 일으킨 병사의 낙하산을 펴주고 본인은 추락해 순직한 이원등 상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직인들 고결하지 않을까만 강재구 소령 순직은 국민 가슴을 저민 사건이었으니 아직도 뚜렷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강 소령의 일화는 1970년대 `아! 중대장님!`이란 제목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지금도 `재구 의식(儀式)`을 거행하고 `재구행진가`도 있다 한다. 여기까진 당연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유감스러움은 있다. `영웅`이라는 고결한 어휘에 등가까지는 매길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 기사 다음에 나의 외우(畏友)인 정영(鄭永)의 맞아들 정재훈(鄭在勳) 중위(추존)도 실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다. 어딜 보나 그럴 만한 충분한 추모지정이 있는 사안인데 말이다. 조금은, 아니 많이 아쉬웠다. 내 친구 아들이라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좀 박정했다고 하면 무례가 될 말일까? 정영의 아들 정재훈이 육군중앙군사학교(ROTC) 수료, 육군 소위로 임관 소대장으로 복무할 때였다. 강원도 고성 북청강에서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훈련 중일 때, 자기 소대원도 아닌 도강하던 두 병사가 강 중심부의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갑자기 닥친 위기에 중대원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때, 정재훈 소위가 바로 뛰어들어 두 병사를 구하고 정 소위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참사를 당하고 말았다. 아! 살신성인의 거룩하고도 위대함을 내 `잡글쟁이` 묵필로는 다 표할 수 없어, 시인 유안진의 시구로 대신할까 한다. "그대 꽃 같은 나이 앞에/ (···) 살아있음이 미안스럽고/ 살아 주절거려 온 언어가 송구스럽고/ 해마다 현충일에 늦잠 잔 것도 용서받고 싶다"고 쓴, 가슴 찌르는 시구를 표절(?)했다는 말이다. 그런 나도 역시 용서받고 싶다. 내 처음 친구 정영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였다. 그날(1990.3.16) 청천벽력의 비보를 듣고 부인과 함께 부대로 달려갈 때의 그 황망함을 가눌 길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도, 나오지도 않았으며 터지는 가슴이 목구멍을 옥죄고만 있었다고 숙연히 회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밝은 얼굴로 돌아옴에 나도 동조하고 말았다. 위로의 한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언급도 했지만, 먼저 간 자식 묻을 때 한 말이라곤 믿기 어려운 가슴 저민 심회라 아직도 내겐 남아 있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사단장과 온 부대원들의 통곡과 비통해함에 위로는 받았지만 이겨내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특히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을 할 땐 정 중위 아버지가 한 말은 `꼭꼭 묻어 놓고···`를 해놓고 보니 그나마도 텅 비어버린 가슴이 그 만 분의 일이라도 채워지기는 했다며,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했다. 겉으로는 `꼭꼭 묻어놓고···`를 토해냈을 것이겠지만, 그 속내의 휘몰아쳤을 폭풍우는 어찌 이겨냈을까를 생각하니 나도 울컥해지며 순간적 격함이 나를 요동치게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아버지로서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였을 것임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았다. 거룩하고 고결한 정재훈 중위의 희생정신을 그 무엇으로도, 그 어디에도 견줄 수나 있으리오만, 그러나 내 가슴 한구석은 "오호! 정재훈 중위가···!"라는 비통함으로 에는 가슴 가눌 길이 없다. 아! 사병 2명을 구하고 순직한 공적이 겨우 `보국훈장 광복장`이라 함에 한없이 허허로움만 밀려왔다. 게다가 `광복장` 하나가 숭고한 희생과 치환(置換)이 됨에 몹시 가슴이 아렸다. 다만, 이 나라 독립군의 거함(巨艦) 안중근 장군의 `위태로운 것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見危授命-견위수명)`를 떠올리는 이 소인배의 미욱함을, 고인이여 용서하소서! 1주기 기일부터 친구는 부인과 함께 매년 열리는 추모 행사 참여는 물론 모교 교정에 동상 건립, 사단 신병교육대에 그 이름을 딴 `재훈기념관`과 `재훈체육관`의 설립, 충북 괴산의 학훈단의 동상 건립, 강릉시 죽헌동의 `율곡과 신사임당의 인성 교육관`은 정재훈 중위의 "숭고한 살신성인과 부하 사랑의 전범(典範)"의 결정판이라고 다시 언급해 보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잊혀져 가는` 게 두려워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라도 `거룩한 정재훈 중위`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절친 정영! 이 졸문(拙文)으로나마 다시 한 번 정재훈 중위의 추모지정을 되새겨 본다. 더욱이 부인과 함께 친구의 그 독실한 불심으로 정재훈 중위가 영생불멸의 영면으로 승화되길 기원하며 이만 쓰려한다.
최종편집:2024-04-26 오전 09: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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