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2일, 봄기운이 완연하여 등산 가방을 하나 메고 파계사 성전암으로 올라갔다. 파계사는 영조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숙종 임금이 대를 이을 왕자가 없어서 성전암에 머물던 현응스님에게 부탁하여 왕자를 하나 점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수락산에 거주하는 농산 스님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여 영조임금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계사 올라가는 입구에는 현응대사 나무가 있고 현응대사가 야간 출타시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현응대사를 등에 태우고 성전암까지 모셔다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계사 앞마당에는 두 그루의 영조대왕 나무가 있는데 현응대사 나무와 함께 수령이 250년 정도 된다고 하였다. 파계사 좌측에 있는 길을 따라 1.3㎞ 쯤 가니 성전암이 나타났다. 성전암은 장좌불와(長坐不臥: 오래 앉아서 눕지도 않고 앉아 있더라도 등을 벽에 기댄다거나 몸체를 어디에 의지하지 않고 참선의 기본자세 즉 가부좌를 하고 오래 있는 것을 말함)로 유명한 성철스님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며 둘레에 철조망을 치고 참선수행(參禪修行)하던 암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 권력자도 성철스님을 친견하려면 삼천배(三千拜)를 올린 연후에 만남을 허락했다고 한다. 성전암에 도착하여 잠시 땀을 식히는데 식당에서 어떤 보살님 한분이 커피를 들고 나왔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까 백일기도를 드리러 왔다는 것이다. 이제 백일기도 회향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기도 공덕의 가피를 입었느냐고 물으니 따님이 면접을 잘 보아서 C교대에 합격하여 입학했다고 한다. 나도 식당에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 얻어 먹고 천원짜리 한 장을 올려 두었다. 커피 한 모금으로 에너지를 재충전 한 후에 성전암을 왼쪽으로 돌아서 등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20여분 쯤 후에 산등성이에 오르니 바로 앞 북쪽에 한티재 휴게소가 보이고 그 아래에 우리나라 초창기 천주교 신자들이 조정의 박해를 피해 모여 만든 공동체인 한티마을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조정에서 천주쟁이를 잡아들이고 처단하니까 군위 등 인근의 천주교 신자들이 인적이 드문 한적한 한티마을로 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연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적 선각자들의 후손 중 한 분이 바로 몇 년 전에 안구 각막을 기증하고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이다. 팔공산의 산등성이 하나를 두고 우리나라 불교와 천주교의 대표적인 인물 두 분이 득도하고 배출된 것으로 보아 팔공산 자락은 우리나라 불교와 천주교의 성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산을 내려오면서 비록 우리 곁에 왔던 부처님(성철 스님)과 우리 곁에 왔던 예수님(김수환 추기경)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분들이 중생 구제와 세상의 고통 받는 약자를 위해서 수행하고, 기도하며 서민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소금과 같은 짠맛을 느끼고 돌아왔다. 성철 스님,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우리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하셨던 분들이 차례로 사라지니 우리 사회의 소금과 같은 정화역할은 과연 누가 해낼까?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이어받듯이 이 팔공산 자락에서 앞으로도 훌륭한 사회지도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바닷물이 썩지 않음은 3%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최종편집:2024-05-14 오전 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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