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최종희 교수)에서 올해의 마지막 명승 답사로 경북 문경권역을 다녀왔다. (2023.11.4) 이날 가장 먼저 석벽을 깎아 만든 벼랑길-토끼비리를(명승 제31호) 찾았다. 문경 토끼비리는 오정산이 영강과 접하는 험한 벼랑의 바위를 깎아서 선반처럼 만든 길이다. 영남대로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위치하며 길 중에서는 최초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이곳에 이르러 길이 막혔는데,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타고 달아났다. 그 토끼를 쫓아 가보니 험하기는 했지만 길을 낼 만한 곳이었다. 토끼가 지나간 벼랑을 잘라 길을 내고 왕건은 힘겹게 진군할 수 있었으므로 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경북 팔경의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鎭南橋畔)에 있으므로 경관이 매우 뛰어나며 주위에는 고모산성과 고부산성 신현리고분군 등의 역사유적이 있다. 길 전체의 길이는 500m 정도이며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하여 암석 안부를 파낸 곳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이 길을 지나다니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이 길은 영남대로의 한 구간으로서 과거 한양과 동래를 이어주던 도로 중 가장 넓고 짧은 길로서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보다 무려 100여리 이상이나 짧은 도로였다고 한다. 모든 길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길은 반드시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끼비리와 같은 험한 지형의 천도는 길의 연결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새로 낸 고갯길-문경새재(명승 제32호)를 찾았다. 문경새재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고갯길이다. 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제1대로였던 영남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고갯길 주변에 새(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라 지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또 하늘재를 버리고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의 "새(新)재"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명칭의 유래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낸 고갯길 "이라고 지리학자 들은 말한다. 문경새재는 관도(벼슬길)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 옛길이었다. 이 길은 조선조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서 새재는 문경(聞慶)이라는 지명과 옛 지명의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스러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지명의 의미도 이 과거 길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문경새재는 과거에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하는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초 태종 14년(1413)에 개통되었다.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는 3개의 관문을 따라 옛날 선비들이 다니던 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약 10km에 이르는 구간이 명승으로 지정 되어있다.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3개의 관문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첫째 관문은 주흘관이다. 숙종 34년(1708)에 설관하였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조곡관으로 선조 27년 (1594)에 신충원이 축성하였으며 중성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관문이 조령관이다.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관문이다. 조선 조정에서 조금 더 일찍 국방에 눈을 떴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세기 초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이화령 고갯길이 만들어 지면서 문경새재는 폐도가 되었다. 다음은 이날의 마지막 답사지인 가장 오래된 백두대간 고갯길-하늘재(명승 제49호)를 찾았다.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하늘재는 신라시대 초기인 서기 156년(이달라니 사금 3)에 개척되었으며 죽령 옛길보다도 2년 앞서 열린 길로 기록되어 있다. 이 고갯길은 충청북도 충주와 경상북도 문경 사이의 가장 낮은 고갯길이다. 하늘재라는 명칭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고개라 하여 붙여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갯마루의 높이가 해발 525m로 그다지 높은 고개는 아니다. 하늘재는 국토방위와 영토 확장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모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북진, 남진정책을 추진했는데 하늘재는 이러한 국가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길목이었으므로 전투가 매우 심했던 격전지이기도 했다. 또한 이 고개는 문명의 길이었다. 삼국시대 한반도에 새로이 도입된 종교로서 새로운 문명의 원동력이 된 불교가 신라로 전해지는 과정에 하늘재는 큰 역할을 한 길이다. 하늘재는 문경새재길이 개통되면서 점점 이용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하늘재 고갯길은 지금도 충청북도 충주시 구간이 옛길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옛길 주변으로 약 40만m2에 이르는 자연지역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하늘재 옛길 주변으로는 중원 미륵사지(사적 제317호), 중원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중원 미륵리 석불입상(보물 제 96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와 다수의 지방문화재가 있어 하늘재 지역은 풍부한 문화경관요소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를 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고갯길에서 일어났던 많은 전쟁과 고대 한반도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영토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던 선조들의 기상을 생각해 보고, 불교의 전래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발전을 되새겨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잊혀버린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가며 옛길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하늘재를 걸어보는 것은 소중한 체험이 되었다. 지난해 조선왕릉 답사에 이어 올해 서울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명승 답사를 마치며 내년에도 우리나라 남단지역 명승 답사(1박2일)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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