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박완서의 산문집.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하면서 그 특유의 신랄한 시선으로 인간의 내밀한 갈등의 기미를 포착하여 삶의 진상을 드러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던 박완서 산문집이다. 표제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비롯하여 45여편의 산문이 수록되었다.
꼴찌를 향한 격려…25년만에 내용 보강
70년대 제일 유명한 산문집이었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다시 나왔다. 25년 만이다. 이번 책은 후에 나온 글들을 보태고, 초판본의 내용을 새로 다듬었다. 70년대 초부터 90년대 전반부까지 약 20여년 동안 쓰여진 글 45편이다. 박완서의 책을 대할 땐 늘 독자의 가슴이 울렁댄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다가 속절없이 따뜻해진다. 글로 박완서를 만날 때 뭉클하게 `당하고 마는` 그 느낌은 얼마나 기대가 되던가.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직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그는 환호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1976년)
한국인들은 그때부터 우리말 사전에서 `꼴찌`라는 말을 다시 발견했다. `꼴찌`의 인권을 기억해내고, 그 말을 온 사방에 유행시킨 것은 박완서의 덕이었다. 마라톤 뿐이 아니라 교실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꼴찌`를 향한 따뜻한 격려의 눈길을 회복했다.
박완서의 산문은 옛 시절의 화면을 오늘날의 공간으로, 생생하고 현재적으로 살려내는,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여우를 만났다는 평안도 개성의 긴등고개 이야기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건만 박완서가 들려주면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았다. 박완서의 어린 시절은 영어의 `~ing`가 붙은 그 속도감으로 우리 곁을 스치고 있었다.
창고에 묻혀 아련해진 것들이 느닷없이 생생한 빛깔로 광 밖에 꺼내질 때 독자의 기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없는 게 없이 마을을 먹여 살렸던 뒷동산, 논 가장자리의 군우물, 새끼줄로 엮어 진흙을 싸바른 흙다리 얘기는 그 시절 범박한 우리네 모습이었을 것이지만, 박완서의 입을 빌리는 순간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처럼 정물화 속의 먼지 앉은 인물들이 화판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참척의 고통에 짓눌려 있을 때 주변의 적당한 무관심이 때론 우리에게 숨구멍이 된다는 것을, 베네딕도 수녀원 얘기를 들으면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절박한 삶의 엄정함, 간절한 삶의 구성짐을 참 듣기 좋게 들려주었다.
`청솔가지가 탁탁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탈 때의 활기찬 불꽃과 향긋한 송진 냄새는 내 향수의 가장 강력한 구심점이다.`(내가 잃은 동산, 1993년)
그 시절은 참으로 봄날이 길기도 길었고 아이들 주전부리의 콩볶아먹기 처럼 구수했다. 소설을 쓸 때 필요했던 상상력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떠오르는대로 편안하게 쓰는 글이어서(실제로 에세이를 쓸 때 그가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되려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힘은 더 강력했다.
문학담당을 맡고 나서 맨 처음 만났던 작가가 박완서였다. 그때 그에게 신(神)을 물었던가. 아차산에 밤을 따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침에 들어가건 오후에 들어가건 해질녘 숲을 빠져 나올 때 그들이 딴 밤의 분량은 대개 비슷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신의 손길이라고 했다.
박완서의 글쓰는 힘은 어디에 비밀이 있을까. 자연에 순응하는 삶에서 거스르고 투쟁하는 삶으로 넘어가길 강요하는 세태에 대한 `이질감`?
저자 : 박완서
출판사 : 세계사
정가 :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