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태어나서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철칙이다. 잘 사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품위 있는 죽음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십 수 년 전 나는 대구 영남대학교이공대학 평생학습원에서 아름다운 중·노년연구소가 주관하는 웰-다잉(Well Dying) 죽음 준비교육 15주 과정에 참여해 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철칙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싫어하고 의도적으로 기피한다. 지금은 소위 백세시대라고 일컫는다. 불과 5,60년 전과 비교해서 30여년을 더 살게 되어 건강할 때부터 죽음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와 같은 좋은 교육 기회가 있어서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기간 15주 과정 맨 마지막 날 `good & bye`라는 일본 영화를 감상했다. 그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나라에 현재 등록된 직업이 800여 개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좀 생소한 것 같지만 `장례지도사(납관사)`라는 직업도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장례지도사`란 사람이 죽은 후에 장례절차의 전반적인 일을 관장하는 것은 아니고, 시신을 관에 안치하기 직전 망자의 전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마지막 절차를 주관하는 틈새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good & bye 영화의 주인공은 원래 첼리스트였지만, 그가 속한 오케스트라단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실의에 빠져 있던 중 우연히 신문 구인광고를 보게 된다. `고소득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에 현혹되어 내 발로 찾아가서 얼떨결에 납관도우미로 입문하게 된다. 첼리스트로서 음악연주로는 성공을 가두지 못했지만, 그 분야 납관 전문가 스승을 만나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 인생행로가 시작된다는 스토리다.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꼼꼼히 전수 받아 시신을 만질 때,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손놀림이 숙연함 보다는 직업에 대한 숭고함이 느껴져서 관객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그러나 가족의 반대가 극심해 주인공은 큰 고민에 빠져든다. 부인이 어느 날 우연히 본 TV에서 끔찍(?)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자기 남편이 모델로 등장해 망자를 납관 시연하는 모습에서 부인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남편의 그 직업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부인의 생각이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으나 잘 먹히지 않자 부인은 남편에게 "그 직업을 그만 두거든 나를 데리러 오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친정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남편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봤지만, 정성스럽게 시신을 다루는 동안 한 인생의 마지막을 자기 손을 거쳐 보내드리는 것에 숭고함이나 사명감 같은 것을 느껴 쉽게 직업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 때 친정으로 갔던 부인이 불쑥 나타나 홀몸이 아님을 남편에게 알리며 머지않아 태어날 아기에게 현재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고 애원하며 집요할 정도로 설득을 거듭했지만, 도무지 남편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주인공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남편에게 가보자고 애원했지만, 남편은 강하게 거부한다. 어릴 때 처자식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나간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가 안 되어서다. 결국에는 부인의 끈질긴 설득과 스승의 당부를 뿌리치지 못하고, 스승으로부터 최고급 관을 기증 받아 아버지 곁으로 달려간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주인공이 아버지 시신을 납관 준비하는 장면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연민의 정을 주인공의 표정 연기에서 함께 묻어나서 나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가 곳곳에서 훌쩍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애연한 슬픔이 배가 되었다. 관객을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한 주인공의 열연 가운데 관객을 울리는 그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숙연하고 가슴이 벅차 눈물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 영화여서 끝나고도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가슴 찡한 영화로 오래도록 마음 깊숙이 각인되어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웰다잉 공부를 했다는 것에 크게 마음이 뿌듯했고 더구나 간접적이나마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과 납관사가 시신을 대하는 경건하면서도 숭고한 그의 표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생의 마지막을 그토록 예로써 보낼 수 있었기에 영혼(靈魂)이 있다면 홀가분하게 이승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비록 15주라는 짧은 웰다잉 교육기간이지만 죽음과 관련된 많은 것을 알게 했다. 죽임에 대한 세 가지 철칙으로 즉, 반드시 죽는다. 혼자 죽는다(사고사 제외).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에 모르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병원에서 임종말기 환자가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수명 단축을 우려해 의사는 보호자에게만 살짝 귀띔한다. 그 다음은 어디서 죽을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대부분 자기 집 안방 아랫목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러나 지금은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오죽하면 요양원 침대가 신종 고려장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떠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죽을지도 아는 사람이 없다. 수명이 다해서 죽을지, 병들어 죽을지, 사고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말기암 환자를 비롯해 식물인간 등 아무리 치료를 해도 소생 가망이 없는 임종 직전의 말기 환자에게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웰다잉법이 시행중에 있다. 즉,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반드시 자필로 작성해서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라는 국가기관에 미리 등록해두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을 말한다. 즉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항암제 투여, 혈액투석 등은 안 해도 되고 최소한의 영양 공급만 해서 임종을 맞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달라진 죽음에 관한 문화다.
최종편집:2025-04-30 오후 04: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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