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을 바람은 살을 스치는 기분좋은 공기가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덕환은 오사카 거리에서 봉환 형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기적처럼 만난 형. 긴장을 풀 새도 없이 셋은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지난날의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바람이나 쐬러 다녀와라." 점심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는 봉환 형은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덕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오사카성과 몇 곳을 추천해주곤 회사 정문 안으로 사라졌다. 삼봉과 덕환은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회사 앞 강변을 따라 걸으며 도시의 풍경을 구경했다. 넓은 도로와 깨끗한 거리, 질서 정연한 집들은 시골 촌놈들의 눈에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내 오사카성에 도착하니, 웅장한 성이 물길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본식 성벽과 높은 탑이 뿜어내는 위압감이 두 사람을 압도했다. 공원에서 한가롭게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둘은 정신없이 걸어다녔다. 박물관, 거리, 그리고 공원까지…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봉환 형의 회사 정문으로 돌아오니, 형이 퇴근길에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집으로 가자." 형은 강을 건너 회사 직원용 숙소로 안내했다. 회사에서 십 분 거리의 숙소는 현대식 시멘트 건물로, 봉환 형의 방은 1층 구석에 있었다. 6~7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혼자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깔끔한 방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까지 잘 갖춰져 있었다. "비좁지만 같이 지내자." 봉환 형은 능숙한 손길로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이며 단출한 저녁을 준비했다. "부족하지만 많이 먹어라." 집밥 같은 따뜻한 식사. 덕환은 오랜만에 꿈같은 행복을 맛보았다. 식사 후 따뜻한 차를 나누며 가족 이야기가 이어졌다. 엄마, 아버지, 누나들 소식, 그리고 형수가 낳은 여섯 살 조카 만준이까지. 형은 아들 이야기에 특히 마음이 기운 듯했다. "형수랑 만준이는 엄마, 아버지와 큰형이 잘 돌보고 있어. 걱정 마." 형은 안도하는 듯 미소 지었다. "형, 앞으로 우리 어떻게 해야 해?" 덕환의 질문에 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글쎄…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러면서 회사가 최근 군수 장비를 제작하느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삼봉과 덕환은 그 말에 희망을 품었다. 다음날, 봉환 형은 출근하고 삼봉과 덕환은 동네를 산책하며 도시의 이모저모를 둘러봤다. 그날 오후, 봉환 형은 용기를 내 현장 소장 마쓰모토를 찾아갔다. "소장님,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봉환은 차분히 사정을 설명했다. 고향에서 찾아온 동생과 친구가 일자리를 구하려 왔다는 이야기였다. 마쓰모토는 사업부장 시절 봉환의 성실함을 알고 있었기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봉환 형은 기쁜 소식을 동생들에게 전했다. "다음 주에 면접이 잡혔다!" 셋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봉환은 동생들의 면접 준비를 위해 이발을 시키고 옷도 새로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면접날. 삼봉과 덕환은 총무과장과 계장 앞에서 침착히 면접을 치렀다. 두 사람은 성실하고 총명해 보였고, 면접은 무난히 진행되었다. 이후 소장과의 2차 면접까지 마친 두 사람은 며칠 후 최종 합격의 소식을 들었다. 봉환 형의 노력 덕분에 삼봉과 덕환은 오사카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셋은 그날 밤 작은 방에서 함께 웃고, 다시 희망을 다짐했다.
최종편집:2025-06-02 오후 04: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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