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총칼 앞에서도 진실과 정의를 외쳤다. 단지 인간다운 삶, 민주주의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 신군부는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무참히 짓밟았다. 책임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심지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는 대답으로 진실을 부정했다. 진심이 아닌 말, 책임 없는 권위와 권력은 글자 그대로 후안무치다. 오늘날 우리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는 자유와 인권을 말하면서도 엄청난 재난 앞에서 국가와 권력은 철저하게 무책임했고 ‘모르쇠’와 ‘기억나지 않는다’만 반복하고 있다. 공직자들의 태도는 국민 앞에서 염치보다는 체면과 자리보전에 더 충실하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밤 대한민국 서울의 이태원에서 159명이 압사당했다. 위험은 이미 예고되었고 관련 신고는 수십 차례 있었다. 경찰은 대응하지 않았고 지자체는 행사를 방치 했다. 대형 참사 이후에 경찰은 “우리는 인파가 그렇게 많이 몰릴 줄 몰랐다.” 라고 했고 행정안전부장관은 “행사주최가 없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대통령은 ”안타깝다“는 표현 이후에 책임자를 문책하기는커녕 유가족을 대면하는데도 수개월이 걸렸다. 늑장 대응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 앞에서 그것을 무시하고 회피하는 후안무치, 진실 앞에서의 침묵, 슬픔 앞에서의 무관심이다. 이들은 참사의 본질을 흐려 축소했으며 책임을 회피했고, 심지어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정치적선동’이라고 밀어부쳤다.2023년 7월, 충북 오송에서는 또 하나의 인재 참사가 벌어졌다. 기록적 폭우 속에 공사 중인 제방이 터지고 무너져서 지하차도를 지나던 차량이 갇혀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시청과 행정안전부의 간부들이 K팝 축제를 논의하느라 재난대응 회의를 늦추었다. 사고 직전까지 아무도 지하차도 진입을 통제하지 않았고 하천 제방의 붕괴위험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참사가 일어나고 국토부는 ‘예상하지 못한 자연재해’라고 항변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대응은 어디에도 없었다. 책임회피와 핑계뿐인 후안무치 그 차체였다. 같은 해 7월 또 하나의 후안무치는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이다.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작업에 투입된 현역 군인 해병대 채상병은 구명장비 하나 없이 물이 크게 불어난 하천에 투입되었다.
유족과 군 내부에서도 무리한 작전지시였다는 내부 증언도 있었다. 수사에 나선 해병대 수사단은 해당 상관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송치하려 했으나 국방부는 이를 중단 시켰고 해당 수사관은 오히려 상관에게 항명하였다는 이유로 입건 되었다. 진실을 말한 사람은 처벌받고 책임을 피한 사람은 자리를 보전하는 이보다 더한 후안무치가 있을까? 광주, 이태원, 오송 채상병 각기 다른 배경과 원인이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책임 있는 자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고, 진실을 외면하였으며, 권력은 조직적으로 자기보호에 급급했다. 국민의 억울한 죽음 위에서 권력은 체면을 걱정했고 정의는 실종되었다.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탄핵 되어 대통령직을 내려놓고도 반려견과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고, 선거판에서는 특정 후보의 지지를 공공연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여전히 정치 활동하는 현실을 목도 하고있다. 후안무치는 진실에 대해 책임을 감당해야 할 자리가 거짓으로 단단하게 무장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뻔뻔하게 구는 상태다. 고개 숙인 듯하면서 눈은 치켜들고, 사과하는 듯하면서 입은 변명만 늘어놓는다. 국민은 책임을 묻고자 하지만 권력은 말을 흐리며 자신만 지킨다. 그런 후안무치가 우리 앞에 늘상 어른거리고 있다. 우리가 호국의 달 6월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은 단순하게 과거의 일을 기리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안전하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태원, 오송, 채상병 사건, 12.3 계엄 역시 시간이 지나야 진실은 복원될 것이지만 우리가 침묵하고 있으면 그마저도 사라질지 모른다. 진실을 은폐 하려는 자들은 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살아남았다. 5.18의 진실은 10년, 2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후안무치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질수록 힘을 얻고 집요하게 살아남는다. 후안무치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은 다수의 선량한 시민의 기억 속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는 늘 기억 하는 자의 편에 서 왔으므로 오늘의 재난과 불법들이 잊히지 않도록, 책임이 흐려지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안무치한 자들은 ‘나는 모른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절차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변명하고 있을 것이다. 후안무치의 네 글자는 오늘의 현실이 아닌 과거의 반성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가, 권력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 두려움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