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선남면의 이영수 씨는 40년 넘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서각작가이다. 독특한 재료와 기법으로 완성한 그의 작품을 통해 서각에 담긴 삶의 깊이를 들여다본다.
▣ 자기소개 및 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지?고향인 성주군 선남면에 자택과 작업실을 두고 서각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까지 25회의 개인전을 열고 8차례 아트페어에 참여한 바 있다.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연잎, 천, 구리, 나무뿌리, 돌, 모래, 구슬, 화투, 캔, 유리조각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다. 단순히 글씨를 새기기보다 회화적인 요소를 더해 주로 `행복`과 `마음` 같은 삶의 감정을 담아낸다. 올해 서각을 시작한지 40년이 되는 해이자 아내 서민수 작가의 환갑을 기념해 지난달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서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군 제대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러던 중 목공예를 하던 친척형님의 작업실을 찾았다가 우연히 나무를 만지게 됐다.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나무의 촉감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후 공방에서 목공예를 익혔지만 취미의 영역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글씨 공부와 서각 수련을 병행하면서 지금의 작업방식으로 이어졌다.▣ 서각의 매력은 무엇인가?서각은 글, 그림, 조각, 회화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글씨를 새기는 과정에는 단순한 문자의 형태뿐 아니라 조각적이고 회화적인 감각도 함께 담긴다. 단순히 문장을 새기는 것을 넘어 나무 위에 감성과 사유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나의 작업 안에 여러 예술 요소가 어우러져 표현의 폭이 넓고 작업할수록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본인만의 표현방식이 있다면?가장 큰 특징은 `모방 없는 독창성`이다. 기존 작가들의 기법을 따르기보다 매 전시마다 이전에 없던 방식을 스스로 탐구하고 구현해왔다. 예를 들어 건축자재로 쓰이던 나무뿌리나 찐 연잎, 천조각 등을 나무에 붙인 뒤 그 위에 글씨를 새기며 재료 자체를 낯설게 구성해 하나의 조형 언어로 바꾸는 방식을 사용한다. 전통목판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재료와 결합하는 실험을 지속해오며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확립해왔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나무에 동분과 아교를 섞어 바르고 염산과 소금물을 이용해 부식효과를 나타낸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이 작업은 과거 대만 타이중에 위치한 자연사박물관 우주관을 관람하던 경험에서 시작됐다. 우주에서 지구를 점점 확대해 들어가다 보면 결국 인간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시각적 체험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작은 점 속에 담긴 겸허와 경외,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작품으로 이어졌다. 작지만 가장 크고 비어 있으나 가장 많은 것을 담은 이 작업은 오랜 시간 내면을 들여다본 흔적이자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제작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작품활동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은?지난 201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생전 어록을 서각으로 표현한 `사람 사는 세상` 전시가 떠오른다. 전시 도록까지 인쇄를 마쳤지만 갤러리 측에서 정치적인 이유를 들며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단지 한사람의 철학을 작품으로 얘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보수텃밭이라는 지역의 정치적 현실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한 벽이었다. 다행히 대구 봉산문화거리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지만 작가로서 현실을 마주한 씁쓸한 경험으로 남았다. 반면,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일본 교토 법련원과 도쿄 게이오백화점에서 열린 전시였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작품의 메시지를 일본어로 전하던 중 몇몇 여성 관람객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마주했다.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다`는 그들의 말을 통해 현재의 삶에 대한 안도감과 용기를 얻었다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순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예전엔 산행을 즐겼지만 요즘은 체력의 부담이 있어 가보지 않은 지역의 둘레길을 중심으로 2~3시간 정도 걷는다. 걷고 나서는 인근의 미술관 등을 찾아 감각을 채운다. 이밖에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이나 일본의 예술섬이라 불리는 `나오시마`의 미술관 등을 찾아다니며 시야를 넓힌다.▣ 가족과 지인 등 주위 고마운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전업작가로 오랜 시간을 흔들림 없이 걸어올 수 있었던 건 한결같은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스스로가 가장 잘났다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곁에서 함께해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길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