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살구꽃......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 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저음 전기가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낮에도 살구꽃......
밤에도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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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봄을 봄답게 하던 때가 있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야 살구는 입에 침을 돌게 하는 시큼하고 맛있는 과일이었지만 집 담장을 화사하게 밝히는 꽃 또한 일품이었다. 그래서 집안에 살구 한 그루쯤은 빠짐없이 심었다. 어린 시절, 우리 외딴 집 한길 가 바람에 흩날리는 살구꽃 아래서 마을을 향해 서 보면 왠지 심심하고 서글퍼져서 마을 안길에 사는 동무 이름을 부르곤 했다. 아마 햇살이 가져다 준 적막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살구꽃을 수천, 수만 개의 알전구에 비유하고 그 전구에 불을 피워올리는 발전소가 꽃나무의 내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비교적 간단한 착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착상이 신선해 보이는 것은 시인의 놀라운 언어 형상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나무의 생명력에 대한 든든한 믿음, 곧 시인의 생명철학이 이 시를 불러일으킨 힘이었음을 느낀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곧 시의 힘이다. 그래서 ‘낮에도 살구꽃’이고 ‘밤에도 살구꽃’이다. 재미있다.
배창환 (시인· 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