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계를 이끌며 평생 민족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심산 김창숙 선생 서거 제44주기 참배 행사가 지난 10일 심산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이창우 군수, 조상용 군의장, 김기대 도의원, 양영문 교육장, 설용숙 경찰서장, 권중동 농협군지부장을 비롯한 지역기관단체장과 유도회·담수회·박약회 회원 등이 참석해 참배를 했다.
참배 행사를 겸한 성주여성유도회(회장 류정숙) 창립 6주년 행사를 맞아 여성유도회가 준비한 다과와 전통차를 나누며, 심산 선생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받들 것을 다짐했다.
류정숙 여성유도회장은 『우중(雨中)에도 많은 참석으로 숭고한 선비 정신을 기억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기약함과 동시에 여성유도회는 이제 6주년을 맞아 걸음마를 벗어나 새로운 발전을 도약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심산 선생이 14년 간의 형을 치르면서 쓴 옥중 시를 낭독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실천하는 지성」으로서의 선비정신을 몸소 보여준 선생의 뜻을 되새겼다.
또한 송지선 유도회장은 『선생의 업적은 이 자리에서 한마디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며 『다만 일신이 편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음에도 일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올곧은 선비정신만은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선생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으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남 및 충청도의 유림 1백37명이 서명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 진정서를 휴대하고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우송했다.
선생은 그 해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약했으며, 쑨원과 교섭해 독립운동 기금을 원조받는 등 광복운동을 위해 분투하다가 27년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원에게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광복 후 전국 유림을 결속해 유림재단을 정리한 후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는 한편,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육영사업을 목적으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을 재건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이에 따라 국가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친 심산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종친회와 경향 각지의 뜻 있는 분들의 성금과 국·도·군비의 지원을 받아 1974년 8월 15일 성주군청 뒤편에 심산기념관을 건립했다.
심산기념관 내에는 심산영정과 심산유고·심산사적비·기타 보도사진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건립 이후 심산 정신계승과 문화행사 등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1997년 3월 성주군으로 기부 이관되어 성주유도회 사무실과 각종 문예 행사장으로 대관되고 있으며, 현재 성주군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다.
/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