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은 빨리 그릴수록 좋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자화상을 그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을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에 한때 의사나 법관이 될 꿈을 꾼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참한 6·25 동란을 겪으면서 저는 농촌을 부강하게, 농민을 잘 살게 하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어느 장날, 윗동네에 사는 농부아저씨 한 분이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불렀던 노래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어떤 놈은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는데 어쩌다 이 내 신세는 이 모양 이 꼴이라는 말인가?” 연간 국민소득 50달러, 지금의 우리 돈으로 겨우 5만원밖에 안되던 때의 일입니다.
5만원으로 일년을 살다니, 온 국민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때에 사기꾼을 잡으면 어떻게 하고 도둑을 잡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말입니까?
법관이고 의사고 다 집어치우고 농민들의 천년 묵은 가난을 이기고 온 백성이 고기와 우유와 계란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는 이른바 복지농촌을 건설하는 일에 내 인생을 바쳐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952년 3월. 당시에 서울대학교 본부는 부산으로 가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고 대구에는 연락사무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하는 내 친구 L군이 대구로 입학원서를 사러 간다는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그 친구에게 내 것도 한장 사다 달라고 부탁했고 그 친구는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입학시험결과는 나는 합격하고 그 친구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껏 원서 값을 주지 못한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치치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다
신(神)은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 일년은 365일을 허용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그 인생이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를 결정짓는 요인일 거십니다. 더욱이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얼마나 열심히 몰두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던 목표를 세운 다음 그 일에 미치치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날 교수연구와 학문생활 50년이나 계속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대견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50년 동안 잡념 없이, 게으름도 휴가도 없이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속한 미개했던 학문분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적인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미친 듯이 목표를 향하여 달려 왔기에 저는 당구, 댄스, 등산, 낚시, 고스톱, 골프 같은 것을 모르고 살아 와야 했던 것입니다.
가히 불구 인생을 살아 왔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대학시절에 고등고시 기술과에 합격할 수도 있었고 자유당 말기에는 성주촌사람으로 꿈도 꿀 수 없는 때에 미국 유학의 길에도 오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르면 몰라도 앞으로 수 십 년 동안에도 성주 사람이 한국과학자를 대표하는 과학기술한림원의 수장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저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일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혹은 일중독자(workaholic)라는 불림을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
사람의 능력이 다 똑같을 수도 없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더더욱 가질 수 없습니다. 유명한 양궁 선수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펠레가 될 수 없듯이, 유명한 과학자가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옛말에 『발을 가진 짐승에게는 날개를 주지 아니하고, 이빨이 있는 짐승에게는 뿔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든지 자기가 평생 종사하기로 결심하고 준비한 분야에서 종신을 해야지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 하면서 기웃거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라는 교훈이 있지 아니합니까?
굵고 짧은 인생
아무리 책임감이 가지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을 다 마치고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가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고 죽는 사람도 없고, 먹고 싶고 입고 싶은 욕망을 다 채우고 세상을 떠난 사람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굵고 짧게 살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늘고 길게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평가는 그 사람을 뭍은 다음에...
우리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큰 잘못 한 가지는 어떤 사람을 수시로 평가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중학생이 대학생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한 가지 언행을 보고 그 인간 됨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사람을 관속에 묻은 다음 비로소 평가한다고 합니다.
나의 경우에도 이런 원칙은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낸 저서 몇 권, 논문 몇 편을 보고 내가 살아온 긴 인생 길에서 겪었던 시련과 보람, 사랑과 미움을 남이 어떻게 소상하게 다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까?
혹자는 나를 평가할 때 원칙에 충실하고 실력 있는 교수, 매우 생산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등의 좋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남의 잘못에 대하여 관용할 줄 모르는 외곬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경우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간하는 이 문집은 그런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써 본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삶의 역정
자전적 에세이집 「행복은 강물처럼」은 저의 학문생활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간하는 문집 전 5권 중 그 첫 번째 책입니다.
먼저 암울했던 어린 시절의 얘기를 비롯하여, 고달팠던 청년시절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장년시절에 느낀 일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람에 찬 노년기의 일들을 엮어 보았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성장했으며, 멀다면 멀고 험했다고 하면 험한 인생역정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그 길을 열어 왔는지를 경험한 대로 서술하였습니다.
독자들은 내가 나그네길을 동행하면서 나의 가족, 친지, 친구, 제자들과 함께 얼마나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 왔는지를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행복은 강물처럼 밀려오고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은 구름처럼 흘러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누가 읽을 것인가?
이 기념문집을 엮으면서 저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장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쓰지도 못한 이 책을 누가 읽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역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제 모두 만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눈이 침침해서 제목이나 보고 말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없으니 읽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나의 지난날의 모습을 정리해 둔다는 뜻에서 이 책을 발간하기로 한 것입니다.
교수연구 회고록「하늘로가 땅, 바다를 넘나들며」
이 책의 제1편에서 나는 학문생활 50년의 준비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원, 군복무, 수습행정관, 연구관, 유학시절의 추억을 먼저 더듬어 보았습니다.
제2편에서는 유학시절 이후에 속하는 지난날의 교수생활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학장시절 2년 동안의 회고담을 수록하였습니다.
제3편에서는 내가 비교적 힘을 써온 국내, 국제학회의 봉사활동을 다시 회고해보았습니다. 한국축산학회를 비롯한 네 개의 국내학회와 AAAP 및 WAAP 등 국제학회의 창립과 발전을 위해 힘써온 지난 40여 년 동안의 일이 거기에 포함된 것입니다.
2000년 2월 서울대학교를 정년 퇴임한 후에 내가 창설한 목운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또한 3년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겪고 느꼈던 여러 가지 추억들과 그 밖의 여러 가지 회고담을 묶어서 제4편인 명예교수생활 회고담으로 엮어보았습니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작은 인생
우리네 인생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하고 자기가 속한 분야의 발전을 위해 족적을 남겼다면 얼마나 큰 것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이와 아울러 우리의 마음을 더욱 허망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나그네 세상에서 살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터전으로 하는 하늘과 땅과 바다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바닷가 모래알 같이 작고 또 작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 모두는 피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개개인의 이런 작은 노력과 헌신이 모여서 더 아름답고 행복한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냇물이 모여서 강물을 이루고, 여러 강물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는 「하늘과 땅, 바다를 넘나들며」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최선을 다 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권의 문집을 요약하면...
제3권 교수연구 업적집 「꿈과 희망의 내일을 바라보며」, 제4권 연설담론집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다」, 5권 사진으로 본 나의 삶의 흔적 「들국화는 피고지고」 등이 있어서 문집은 모두 전질 5권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문집을 다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될 것으로 사료합니다.
첫째, 어린 시절에 고생을 모르고 자라면 진정한 삶의 행복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성현께서는 「초년고생은 금을주고 산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둘째, 우리가 엮어 가는 삶의 현장에서 그 것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꿈은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셋째, 무릇 인생은 그가 어떻게 살았더라도 후회와 뉘우침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에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요?
넷째, 우리는 아무리 원리원칙대로 그리고 법 없이도 살려고 노력해도 본의 아니게 조금씩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엄격하게 처신하더라고 남의 실수에 대하여 관용할 수 있다면 품격 높은 인생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다섯째, 감사는 행복의 근원입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면서 사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여섯째, 자기만을 보살피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자기보다 불우한 이웃을 돌보며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모교를 돕고 고향을 돕는 일은 우리에게 부족한 「기증문화」가 정착되어 실시할 수 있는 지선지고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서독으로 건너간 광부 및 간호사와 월남 참전용사들이 가족을 돕고 나라를 도운 얘기는 오래오래 기억될 미담이 될 것입니다.
일곱째, 무릇 큰 일을 할 사람들은 불고가사해야 하고 자기 분야와 국가의 발전을 가져오도록 인재양성을 반드시 이룩해야 합니다. 1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꽃을 심고, 10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사과나무를 심으며, 백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사람을 기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덟 번째, 열심히 일하는 것은 참으로 고귀한 인생의 덕목이라고 할 것입니다. 일은 덜하고 돈은 더 받겠다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사라져야 우리는 3만불 시대를 열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스위스국제경영연구소(IMD)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경쟁력은 세계 50위, 국가경쟁력은 29위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분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혀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어느 정당은 며칠전 지방선거로 퇴출위기에 처하고야 말았습니다.
한인규 교수
1934년 10월 12일 경북 금능군에서 출생
성주농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학사) 및 동 대학원(석사) 졸업
미국 Utah 주립대학교 대학원(박사)졸업
미국 Cornell 대학교 대학원(박사)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조교수, 부조교, 교수
학국축산학회장, 한국영양학회장
제3대 아세아태평양축산학회장
초대 한국영양사료학회장
제11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육연구재단 이사장
국담축산학교육연구재단 이사장
제8대 세계축산학회장
제2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중국농업대학교, 연변대학농학원 명예교수
제3세계과학아카데미 종신회원
소련농업과학아카데미 외국인회원
제3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