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 역사스페셜 김영두 PD 일행 4명은 지난 달 23일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봉산)에 있는 충렬사와 옥천서원 등의 유적지 촬영을 위해 봉산마을을 찾았다. 이날 조선 중기의 의사(義士) 이사룡(李士龍) 선생의 14대 종손인 이상연(재구성주향우회 사무국장)씨를 비롯해서 종회장 이종성, 문중원로 이종택, 이종득, 이종호 씨 등 다수가 참석했다. 이사룡 선생의 본관은 성산(星山)으로 인조 때의 무인이며,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중국대륙 지배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1640년(인조 18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우리나라에 원병을 요구함에 따라 조선에서는 정예군 5천명이 징발됐다. 이때 포사로 출전하게 된 이사룡 선생은 부모에게 하직인사와 함께 아내 이씨에게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내 부모를 잘 모시라』는 부탁과 함께 전쟁터로 떠났다. 이 선생은 금주성 송산 싸움에서 명군의 장수 조대수와 맞닥뜨렸을 때 총에 탄환을 빼내고 공포로만 쏘다가 청군에게 발각되어 추궁을 받게 됐다. 그러자 『우리 조선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신종으로부터 받은 은덕은 만세에 이르도록 잊지 못할 일인데, 어찌 그 들에게 포를 쏠 수 있겠느냐』며 끝까지 포쏘기를 거절하며 배반의 불가함을 역설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이에 명나라 장수 조대수는 「대명충신이요 조선의사」라 크게 써서 걸었으며, 청태조 역시 의로운 일이라 하여 소현세자가 환국할 때 그 주검을 운구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니 인조가 지나는 길의 5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예장하도록 하고 월항면 작촌 고산에 안장하게 했다. 이때 옥천서원과 충렬사는 1692년(숙종 18년) 성주목사 오도일이 사림과 함께 재정과 목공을 모아 창건했으며, 1793년(정조 17년)에 공의 충절이 부각되면서 성주목사에 추증됐고 동시에 정려가 내려졌다. 다시 1796년(정조 20년) 사액되어 본도 관찰사로 하여금 예조의식으로 춘추향사를 하여 오다 1872년(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훼철됐다. 그러다 1979년(기미년) 향도유림의 공론으로 충렬사와 옥천서원을 성산이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용암면 대봉리(봉산)에 복원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KBS 역사스페셜 팀의 이사룡 유적지와 중국 금주성 송산싸움터 촬영분은 다음달 4일 역사스페셜 「열하일기 편」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정미정 기자
최종편집:2025-07-09 오후 05: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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